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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

260418 새벽기도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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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샘물교회

본문

두려움 속에서 드러나는 은혜 (창세기 4316-34) 

살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지?” “혹시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더 큰 일이 터지는 것은 아닐까?” 오늘 본문의 요셉의 형들도 그랬습니다. 지금 요셉의 형제들은 애굽의 총리인 요셉의 집으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떨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18절에, 지난번 자루에 돈이 다시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도둑으로 몰릴까 봐 무서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는데 그들이 그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은혜를 준비하시고 그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고 징벌하시는 것으로 착각하여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품으려고 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도망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두려움 속에서 은혜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리에서도 일하십니다.

16절에서,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보자마자 종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그러나 형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이미 그들을 맞을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상황을 보고 두려워 떨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은혜의 잔치를 이미 준비하고 계십니다.

요셉의 형들은 잔치에 초대를 받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18절에,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잔치에 초청을 받았는데 불안해 합니다.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의심합니다. 왜입니까? 죄책감 때문입니다. 죄를 가진 사람은 작은 호의조차도 심판처럼 느껴집니다. 누가복음 1521절에, 아버지께 죄를 지은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탕자는 아버지가 그를 반기며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지만,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탕자의 아버지는 그의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말했습니다.(15:22-24)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예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회복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감싸 주시며 마침내 회복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숨겨진 두려움을 알고 계십니다.

20-22절에, 형들은 요셉의 청지기에게 먼저 가까이 나아가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지난번 양식을 사면서 지불한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에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돈을 훔친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먼저 변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아무도 묻지 않아도 스스로 두려워하며 무너지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의 청지기로부터 놀라운 말을 듣게 됩니다. 23절에,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정죄함을 받을 것을 예상했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말씀하십니다. “너희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에게 주신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설명이 아닙니다. 지금 요셉의 형들이 받고 있는 은혜는 하나님이 이미 계획하셔서 공급하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형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위한 은혜를 채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미래가 두렵습니까? 진로에 대해 두렵습니까? 관계가 두렵습니까? 가정 문제가 두렵고 경제 문제가 두렵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보다 이미 앞서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움직이십니다. 우리가 울기 전에, 하나님은 길을 준비하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를 이미 준비하시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3.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십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바로 식탁의 장면입니다. 24절에서, 요셉의 청지기가 형들에게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들의 나귀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요셉의 식탁에 초대가 되었으므로 25절에, 예물을 준비했다가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였습니다. 그리고 26절에, 요셉이 집에 왔을 때,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제들과 함께 식사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함께 하는 식사였습니다. 성경에서 함께 식탁에서 먹는다는 것은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관계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원수와는 함께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에서 목장 모임에서 식사를 함께 나누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 식사의 나눔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미 때문입니다. 29-30절에, 요셉은 베냐민을 보고 마음이 무너집니다. 급히 울 곳을 찾아 들어가서 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은 지금 애굽의 총리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동생을 보자 눈물이 터집니다. 왜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이렇게 바라보십니다. 우리 모두는 실패한 후에 하나님 앞에 옵니다. 넘어지고 죄짓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나아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보며 눈물 흘리십니다. 정죄와 심판보다 우리의 회복을 간절하게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이 아니라 사랑의 계획입니다

34절에, 이상한 장면이 나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나이 순서대로 앉게 하고 음식을 나누어 주는데, 베냐민의 음식이 다른 형제보다 다섯 배 많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셉이 동생 베냐민을 사랑했던 것도 있지만, 형제들을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형들이 요셉을 질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형들이 베냐민을 질투하며 미워할까? 이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형들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질투 대신 함께 기뻐하며 식사를 즐겼습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환경만을 바꾸시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십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전에 질투했던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예전에 미워한 사람을 축복하게 되며, 예전에 자기만 알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을 품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5. 본문의 식탁의 은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줍니다

오늘 본문은 결국 식탁 이야기입니다. 두려워 떨던 죄인들이 총리의 식탁에 앉게 됩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그림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와서 함께 먹자.” 마치 요한복음 2112절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떠난 제자들에게 식탁을 차려 주시며,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초청하시면서 주님이 어떤 분이심을 깨닫게 하셨던 것처럼,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128-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음은 네가 완벽해지면 나에게 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수고하고 짐 진 자들을 부르는 것이 복음입니다. 오히려 내가 준비했으니 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로워서 예수님의 식탁에 앉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로 초청하셨기 때문에 구원의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의 형제들은 처음에 자신들이 저질렀던 잘못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 뒤에는 요셉이 베푸는 잔치가 있었습니다. 그 잔치는 은혜의 잔치이고, 회복의 잔치이며 함께 즐거워하는 잔치였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불안할 수 있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기 전에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가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은혜의 식탁을 차리고 계십니다. 지금 두려움 속에 있습니까? “나는 끝났다.” “나는 자격 없다.” “하나님은 나를 외면하셨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우리보다 먼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은혜를 붙들고 다시 일어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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