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1 창 45:1-15 화해와 용서를 이루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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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용서를 이루시는 하나님 (창세기 45장 1-15절)
1. 하나님은 상처 속에서도 일하십니다.
1절에, 요셉은 그의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안에서 충만하게 넘쳐나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요셉은 지금까지 감정을 참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강철 인간이 아닙니다. 그도 역시 상처받은 사람이었습니다. 17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은 이십에 팔렸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 인생의 세월이 무려 20년이 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긴 시간 동안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도 그런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왜 아무 말씀 안 하십니까?” “왜 나만 이렇게 힘듭니까?” “왜 원수들은 잘되고 나는 무너집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계십니다. 요셉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5절에,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너무나도 중요한 구절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보내셨나이다.” 형들은 “팔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보내셨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실패 가운데서도 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겪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조각만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전체의 그림을 보십니다. 혹시 지금 상처 가운데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 가정의 문제로 울고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직 끝내지 않았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흘리고 있는 눈물을 헛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2절에, 요셉이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이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애굽의 총리가 무너져 내리듯 대성통곡하고 있습니다. 왜 울었을까요? 분해서입니까? 억울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동안 참았던 모든 감정과 눈물이 터진 것입니다. 어릴 적 겪었던 외로움, 노예 생활의 고통, 춥고 외로운 감옥의 밤,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눈물과 함께 한순간에 터져보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기억하십니다. 사람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시편 56편 8절에, 다윗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간구입니까? 이것을 통해 다윗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성도의 눈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울지 말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강해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는 눈물은 믿음의 눈물이다.”라고. 눈물은 약함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한 기도입니다. 지금 아무도 모르게 울고 계십니까? 혼자 우는 밤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 눈물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눈물을 기억하고 있다.”
3. 용서는 하나님의 사람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4절에,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폭로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이 얼마나 충격적인 말입니까? 얼마나 긴장되는 순간입니까? 형들은 이제 우린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정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5절에,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라고 말합니다. 용서와 화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근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보다 앞서 일하시고 준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형제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보다 앞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시기 위해 우리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용서했습니다. 왜입니까? 그가 하나님의 뜻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상처만 바라보면 복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보면 용서하게 됩니다.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결단입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마음이 아직 안 풀려서 용서하지 못 하겠어요.” “아직까지 상처에 대한 기억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겠어요.” 맞습니다.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이기 때문에, 우리는 용서하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요셉도 상처가 매우 아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 때문에 용서한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을 때리고 조롱하고 침 뱉었던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먼저 용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에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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