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홈 | 말씀

새벽말씀

260427 새벽기도 말씀

페이지 정보

작성자샘물교회

본문

떠나게 하시는 하나님,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 (창세기 3117-35)

 

살다 보면, 어려움을 겪으면서 혼자 조용히 울던 밤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고통의 밤. 그래서 눈물로 베개를 적시던 밤. 그러면서 하나님을 향해 호소하곤 합니다. “하나님 왜 나만 이렇게 힘듭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묻던 밤이 야곱에게도 있었습니다. 20년 동안, 속고 속이고, 그래서 상처받고, 하지만 견뎌야만 했던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낮에는 더위가, 밤에는 추위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남들은 아내들과 자식들이 많아서, 모아둔 재산들이 많아서 야곱을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야곱의 인생은 상처투성이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3절에, “이제 떠나라.”. 하나님은 머물게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때가 되면 떠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1. 하나님은 울면서 버티고 있는 사람을 떠나게 하십니다.

17절에,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 태우고 길을 떠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사가 아닙니다. 행복과 신앙을 되찾기 위한 믿음의 탈출이요, 포로 생활을 끝내고 자유를 찾기 위한 탈출입니다. 20년 묶여 있었던 자리를 떠나는 순간이 야곱에게 찾아왔습니다. 때로 떠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익숙한 곳이 항상 약속의 땅은 아니고, 편한 곳이 항상 하나님의 뜻인 것은 아닙니다아브라함도 떠났고, 모세도 떠났으며, 예수님의 제자들도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항상 떠남이 있습니다혹시 지금 내 삶에 붙들고 있는 라반의 집은 없습니까? 상처인데 못 떠나는 관계, 익숙해서 못 버리는 죄, 편해서 떠나기를 주저하는 자리, 하나님이 오늘 그 자리를 이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어미 독수리는 새끼 둥지를 흔듭니다. 왜 흔드는 것일까요? 새끼가 미워서 흔드는 것이 아닙니다. 새끼를 날게 하려고 흔듭니다. 새끼가 편한 둥지에서 평생 머무르면 새끼 독수리는 닭처럼 살게 됩니다. 둥지를 떠나서 산 위에서 산 아래로 날 수 있어야 독수리처럼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둥지, 우리가 의지하며 살던 것들을 흔드실 때가 있습니다. 직장을 흔드시고, 관계를 흔드시며, 건강을 흔드십니다. 왜요? 날으라고. 비상하라고. 그러므로 흔들림은 버림이 아닙니다. 비상의 준비이고 높은 곳에 세우심의 준비입니다.

2. 떠나는 길엔 반드시 이것을 저지하는 추격이나 공격이 있습니다.

23절에, 야곱이 떠나니까 라반이 쫓아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결단하면 시험 옵니다. 은혜를 받으면 공격이 찾아옵니다. 미래를 향해서 떠나려고 하면 과거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애굽에서 나오니까 홍해가 가로막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니까 광야가 놓여 있으며, 예수님을 따르니까 박해를 받습니다. 순종에는 이와 같은 장애물이 항상 존재합니다. 지금 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떠났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그 길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르게 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24절에, 야곱은 모르고 있는데, 밤에 하나님이 라반을 막으셨습니다.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함부로 야곱을 건들지 말라.)” 하나님은 야곱이 자는 동안에 야곱을 지키기 위해 일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우리가 울고 있는 동안에, 고통 받는 그 현장에 함께 하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하나님은 싸우시고 승리하시어 우리에게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내가 싸우고, 내가 버텨서 이긴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나를 위해 싸우셔서 내가 이길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스스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았는데,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3. 떠나는 사람 안에 여전히 우상이 숨어 있음을 봅니다.

19절에,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가려고 할 때,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했습니다. 매우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우상인 드라빔을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 마치 우리의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입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속으로는 여전히 우상과 세상을 의지하는 모습,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여전히 돈과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과 세상의 권력을 더 의지하는 모습, 날마다 우리를 지켜주시고 회복 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상처만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의 오습과 같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이는 우상을 섬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과 세상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어떤 사람이 새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이전 집에 가지고 있던 쓰레기봉투를 끌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주변의 이웃들이 그 모습이 이상해서 왜 쓰레기를 가져갑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정이 들어서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전의 물건들은 새로운 곳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됩니다. 종량제 봉투도 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옛 생각이나 습관, 심지어 죄에 대한 죄책감과 상처도 모두 버리고 의지하고 살던 모든 우상들도 제거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도 언약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시고 품어 주십니다.

라헬은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만 아름다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위해 살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태에서 요셉이 태어나게 하시므로 그를 통하여 사람들이 생명이 흉년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야곱도, 라헬도, 그리고 우리도 부족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은 변치 않고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은 잘난 사람들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망가지고 부족한 사람들을 붙드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혹시 이렇게 생각한 사람은 없습니까? “나는 실패했어.” “너무 문제가 많아.” 하나님도 나를 포기하셨겠지?” 아닙니다. 야곱과 라헬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여부는 그 사람의 어떠함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실패보다 더 큽니다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보다 더 큽니다. 우리가 겪은 상처보다 깊습니다.

5. 우리를 떠나게 하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지키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떠나 보내신 하나님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밟게 하실 뿐만 아니라 100세에 이삭을 주시며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지키셨고, 모세 보내신 하나님은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함께 하시며 돌보시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시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셨으며, 예수님을 보내주시어 우리를 위한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은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어 우리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보내시며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오늘도 주 안에서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며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 46239 ]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샘로229번길 1
  • TEL : 051-517-3927
  • Copyright © 대한예수교장로회 샘물교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