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19 새벽기도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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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속에서 드러나는 은혜 (창세기 44장 1-13절)
인생에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자꾸만 나에게 일어나는가?” “왜 하나님은 내가 겨우 안정을 찾으려 할 때 또 흔드시는가?” “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시험이 오는가?”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의 형제들이 바로 그런 상황을 만납니다. 기근 속에서 애굽에 내려왔고, 곡식을 얻었고, 막내인 베냐민도 무사하게 되었고, 총리의 집에서 잔치까지 했습니다. 이제 모든 문제가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립니다. “멈춰라!”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립니다. “너희 중 누가 총리의 은잔을 훔쳤다.” 그 순간에 요셉의 형제들의 얼굴은 굳어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단순한 도둑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중심을 드러내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무너뜨리십니다. 하지만 그 무너짐은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시험하시는지, 문제 속에서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숨겨진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1-2절에, 요셉은 그의 청지기에게 말합니다.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이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왜 이런 일을 할까요? 요셉은 형제들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이 예전 그대로인가?” “아직도 시기와 질투 속에 사는 사람들인가?” “또 막내를 버릴 사람들인가?” 과거에, 형들은 요셉을 팔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는 동생을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사랑받는 동생 베냐민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같은 시험을 다시 허락하십니다. 왜요? 그들의 변화가 진짜인지 확인하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의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겉으로는 믿음이 좋아 보입니다.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시험이 오면 진짜가 드러납니다. 작은 손해 앞에서 탐욕이 드러나고 억울한 일 앞에서 분노가 드러납니다. 또한 비교 가운데서 시기가 드러나고 실패 속에서 교만이 드러납니다. 평소에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흔들리니까 진짜 사실이 나옵니다. 컵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흔들어봐야 압니다. 하나님은 흔드심으로 우리 안 있는 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어떤 성도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제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인지를 몰랐어요.” 사업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또한 배신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자기 안에서 독이 가득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성도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문제를 통해서 제 속을 보여주셨어요.” 그렇습니다. 시험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우리의 진짜 상태를 보여주시는 거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까?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보다, “하나님, 이 일을 통하여 제 안의 무엇을 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런 기도가 영적 성숙의 시작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붙드는 것을 건드리십니다.
3-5절에, 아침이 되자 형제들은 고향을 향해 떠납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청지기가 따라옵니다. 그리고 그들을 추궁합니다. “왜 악으로 선을 갚았느냐? 왜 총리의 은잔을 훔쳤다!” 이 말을 들은 형제들은 너무나도 억울합니다. 정말 결백합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합니다. 9절에,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얼마나 당당합니까? 그런데 문제는 은잔이 실제로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요셉이 왜 하필 베냐민을 건드렸느냐입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잃어버린 요셉 대신 이제는 베냐민 하나만 붙들고 삽니다.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냐민은 이제는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붙들고 사는 것을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왜냐하면 그것이 우상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붙드는 것, 돈, 사람, 인정, 성공, 자존심, 미래, 안정감, 이런 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커질 때, 하나님은 어김없이 그것을 흔드십니다. 왜요? 우리를 망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붙들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까? 이삭이 악해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인지, 이삭인지를 보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결국 “내가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가”의 문제입니다. 혹시 하나님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습니까? 잃을까 두려운 것이 있습니까? 없어질까 불안한 것, 사람들에게 인정 못 받을까 무서운 것, 그것이 여러분의 중심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보다도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느냐?”
3. 진짜 회개는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10-13절에, 결국 잃어버린 은잔은 베냐민 자루에서 나왔습니다. 형제들이 예전과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잘됐다. 저 놈 하나 버리고 가자.” 그런데 오늘 본문의 형제들은 다릅니다. 13절에,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옷을 찢고” 성경에서 옷을 찢는다는 것은 극심한 슬픔과 회개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당사자였던 베냐민만 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형제 모두가 함께 울었습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동생 하나를 팔아버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동생의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느낍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참 회개는 눈물 몇 방울 아니라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차갑던 사람이 따뜻해지고 이기적이던 사람이 함께 아파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참 변화 곧 회개입니다. 회개는 관계를 바꿉니다. 여러분 안에 아직 미움이 있습니까? 아직 용서 못 한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함께 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예수를 믿고도 마음이 차갑다면 아직 십자가가 깊숙이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4.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은혜의 시작입니다.
오늘 본문은 절망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베냐민은 범인처럼 잡혔고, 형제들은 절망으로 인해 무너졌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이 사건 뒤에 요셉의 뜨거운 용서와 화해의 눈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곧 놀라운 회복이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무너뜨리신 뒤에 새롭게 세우십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꺾인 후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실패 후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탕자는 실패와 후회 뒤에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는 사람들의 눈에 저주의 상징이요 완전한 실패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부활을 통한 완전한 승리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베냐민의 자루 안에서 요셉의 은잔이 발견되었습니다. 베냐민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갑자기 찾아오는 은잔 사건들이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억울함, 갑작스러운 실패, 관계의 깨어짐, 질병, 눈물, 배신 등. 그 순간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저에게 생기는 것입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을 깨뜨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붙잡고 있는 우상을 깨뜨리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요셉의 형제들은 은잔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옛 모습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을 통해 회복의 시작이, 새로운 관계의 회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너의 연약함을 숨기지 말아라.” “너의 마음의 중심을 내게로 가져와라.” “무너져도 내 앞에서 무너져라.”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무너진 사람은 결국 은혜로 다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실패와 두려움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다시 새롭게 세우심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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