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8 고전 5:1-13 거룩하고 진실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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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진실한 공동체(고린도전서 5장 1-13절)
우리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또한 우리가 교회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 각 사람은 그의 몸의 각 지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이후에는 이전에 행했던 나쁜 옛 습관을 끊어 버리고 새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서로 사랑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동하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의 자녀들을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랑의 진실함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와 같이 “거룩함”과 “사랑의 진실함”의 두 날개를 온전하게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는 이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1-2절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의 자격에 대해 의심하며 따지고 들었는데, 음행을 범한 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용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을 스스로의 판단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바울은 2절에서 교만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죄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않은 것에 분노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연약한 인간들의 모임이므로 언제든 죄악이 틈탈 수 있지만, 죄짓는 행위를 용납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만”입니다. 이방인이었던 그들이 옛 이방인의 생활 습관을 미처 다 버리지 못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들의 진정한 문제는 그 악행 가운데서도 여전히 회개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형제의 죄악을 보고 함께 애통해하는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습니다. 3-5절에, 바울이 “떠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3차 전도여행 중에 있음을 뜻합니다. '영'이라는 표현은 '마음'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린도 교회와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음을 의미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와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는 바울은 음행한 자들을 징계할 것을 촉구합니다. 교회 안에 징계가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개인적 차원으로, 범죄한 사람을 징계함으로 그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므로 구원을 얻을 가능성을 얻게 하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교회 공동체적 차원으로, 죄가 공동체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4절에서, 교회의 징계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위에 그 근거를 두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13절에, 범죄자의 출교는 일차적으로 그들의 죄를 심판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다른 성도들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음행한 자들을 사탄에게 내어주는 교회의 심판은 영원한 것이 아닌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운명은 변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참된 사랑의 원리인 징계를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그들에게 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또한 올바른 징계를 행함으로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바울은 5절에서 “주 예수의 날”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 징계 받은 죄인들을 주의 백성들 가운데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징계는 범죄한 영혼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이나 유기(내버림)가 아니라, 회개와 돌이킴을 얻기 위한 일시적 고난이며, 구원을 전제로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5-18절에,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합니다. 교회의 권징의 절차에 대한 말씀은 모두가 잘 아는 잃은 양과 양 아흔 아홉 마리의 비유의 말씀 바로 뒤에 오는 것으로 권징의 법적 징계에 대한 측면보다 사랑으로 포용하려는 노력을 더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더불어 고린도후서 7장 10절의 말씀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범죄자를 그대로 방치하는 행위는 사랑이 아닌 무관심의 소치로서 그 사람을 멸망에 빠뜨리며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타락하게 만드는 범죄라는 것과 참된 징계의 정신은 사랑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6-8절에,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사를 가졌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음에도, 사랑과 은사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많은 좋은 은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은사들을 죄를 묵인하거나 죄에 빠지기 위하여 유창한 변명들을 만드는 것에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6절에, 바울은 작은 양으로도 그보다 몇 배 더 큰 반죽 덩어리를 발효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누룩처럼 죄의 파급력이 대단함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죄의 모양이라도 버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와 교회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누룩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죄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기 전의 타락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과 교회가 죄로부터 자유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룩 없는 자들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8절에서, “명절을 지키되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라는 말씀은 “거룩한 예배를 드리자.”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다시 범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예배에 참예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룩이 아니라 순전함과 진실함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순전하며 진실한 사랑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한 우리 자신을 기쁘게 만들 것입니다. 거룩하기를 소망하면서도 늘 풍성하고 따뜻한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권면하는 우리 공동체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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