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20 새벽기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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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잃은 자의 때늦은 후회 (창세기 27장 30-46절)
우리가 수년전 코로나 시대를 경험하면서 영적으로 깨닫는 중요한 교훈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믿음의 기회, 예배할 기회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자유롭게 함께 모여 예배하고 있지만 언제 또 이런 일이 반복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코로나의 긴장이 사라지고, 이제는 반대로 예배에 대한 열정과 중요성이 감소되어 버린 현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굳이 함께 모여 예배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온라인으로 예배하면 된다는 안일한 신앙 태도가 우리 가운데 암세포처럼 퍼져 있어서 우리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주시는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의 기회가 있는 지금 이 기회를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기쁨으로 누려야 합니다.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 기회를 잃게 될 때가 오게 됩니다. 지금 깨어 예배하지 않으면, 예배할 수 없을 때, 후회할 때를 당하게 됩니다. 예배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주어진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것을 잃고 후회하지 말고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나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므로 크게 후회하게 되었던 에서에 대한 말씀입니다.
1. 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장자권을 잃고 축복까지 받지 못해 후회하는 에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 27장 전반부에서는 큰아들 에서를 축복하기 위해 준비하는 이삭, 이삭의 계획을 엿듣고 작은 아들 야곱이 대신해서 축복을 받도록 계략을 꾸미는 리브가, 또한 형처럼 자신을 꾸며서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채는 야곱이 차례로 등장하였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두고 한 집안 안에서 아버지와 큰 아들이 한 편이 되고, 어머니와 작은 아들이 한 편이 되어서 속고 속이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이제 성경은 우리의 시선을 사냥을 마치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는 에서에게 향하게 합니다. 가짜 에서가 이삭을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남김없이 받고 나가자, 곧 진짜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본문 말씀은 “야곱이 나가자 곧 에서가 돌아왔다.”라고 표현합니다. 야곱은 윤리적으로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방법으로 형 에서에게 갈 축복을 가로챘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는 말씀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죄나 연약함을 통해서도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30절에, 에서가 야곱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서 사냥하고 음식을 해서 아버지 이삭에게 들어옵니다.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드신 후에, 자신을 마음껏 축복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때 이삭이 32절에, “너는 누구냐?”라고 에서에게 묻습니다. 이미 동생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에서 자신이 받아야 할 모든 축복을 받고 나간 것입니다. 이삭이 이렇게 말합니다. 33절에,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야곱에게 축복하고 싶지만 다시 번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야곱에게 축복한 것은 바로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기 때문에 변경할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여기 이삭에게서 배울 영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자신은 축복의 통로일 뿐이고 이 축복을 주시는 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사십시오. 그리고자신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되시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십니다. 오직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이삭처럼 나는 통로일 뿐이고, 하나님만이 축복의 주권자이시요, 통치자이심을 고백하는 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복과 은혜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게 됩니다. 에서가 자신에게 주어진 장자의 권리를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것(창 25:33)은 단순히 그의 정욕이 이성보다 강하여서 실수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거나 그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까닭입니다.(창 25:32-34) 그에 대한 댓가를 오늘 본문에서 혹독하게 치루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면 축복을 받지 못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34절에, “축복을 받을 수 없다.”라는 아버지 이삭의 말에 에서가 대성통곡합니다. 소리 내어 울며 자신에게도 축복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이는 에서의 때늦은 후회입니다. 이미 에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가 내려주시는 축복을 무시하고 자신의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동생 야곱에게 너무나 쉽게 자신의 장자권을 넘겨버렸습니다. 정작 장자로서 축복을 받아야 할 때 축복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 때늦은 후회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사랑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용서하며, 건강할 때 그 건강을 지키고, 더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살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을 때, 우리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고, 후회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것들을 가볍게 여기면, 나중에 후회가 될 것입니다. 이삭은 그 때 큰 아들 에서의 복을 가로채 간 것이 작은 아들 야곱이었음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35절에,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라고 말합니다. 이삭을 크게 떨게 만든 실수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삭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이런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가정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집 밖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신앙의 모범을 보이면 그 영향력이 자녀들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미칩니다.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축복된 가정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후회하기보다 잘못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36절에, 에서는 동생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서 자신의 복을 가로챘다는 것에 분개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야곱에게 속은 것이 이번이 두 번째라고 말합니다. 이전에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창 25:33). 그런데 그때는 야곱이 에서를 속였다기보다는 에서가 당장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그럼에도 에서는 아버지 앞에서 그 일도 자신이 야곱에게 속은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마치 아담이 범죄 후에 여자를 비난한 것처럼(창 3:12)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것입니다. 에서는 동생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야곱”의 뜻이 ‘발꿈치를 잡다’ 또는 ‘속이다’를 의미하는데, 야곱은 태어날 때, 에서의 발꿈치를 손으로 잡으면서 나왔고, 또 오늘 이삭을 속여서 에서에게 갈 복을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였습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이름값을 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37-38절에, 에서가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하고 야곱은 원래 이런 놈이었다고 항변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이삭이 남김없이 야곱을 축복했기에, 에서에게 빌어 줄 복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아버지에게 자신을 위해서도 복을 빌어달라고 애원하지만, 이삭은 야곱이 이미 그가 빌어 준 대로 복을 받고 잘살게 될 것을 선언할 뿐입니다. 이미 좋은 것은 모두 야곱에게 빌어 주었으니 자신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큰 것을 빼앗겼는지를 새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서는 소리를 높여 울면서 자신에게 복을 빌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에서는 한 그릇의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팔 정도로 망령된 자(히 12:16)였기에, 오늘 그가 장자가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것도 어찌 보면 필연적입니다.
4.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 인간의 욕심이 지배하는 가정의 결말은 분열입니다.
39-40절에, 이삭은 이미 다 끝난 상황임에도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에서에게 복을 빌어 주는데, 그 내용은 저주에 불과했습니다. 야곱에게 빌어 주었던 복의 반대되는 것을 빌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에서가 ‘기름지지도 않고 비도 잘 내리지 않는 땅에서 칼을 의지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칼을 의지하면서 산다는 것은 전쟁과 전리품에 의존하는 약탈자로 산다는 뜻입니다. 또 이삭은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인데,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 매임을 벗을 때에야 비로소 야곱의 멍에를 떨쳐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이삭의 예언처럼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훗날 유다 왕 여호람에 대항한 반란의 결과로 유다 왕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됩니다. (왕하 8:20-22) 41-45절에, 자신이 받아야 할 복을 가로챘으니 에서가 야곱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온 에서는 이를 갈았습니다. ‘미워하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사탐’은 폭력적인 보복을 염두에 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분노를 뜻합니다. 에서는 아버지가 별세하면 야곱을 죽이겠다고 작정합니다. 에서는 아버지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였기에 자신이 원수를 갚을 날도 멀지 않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에서의 기대와는 달리 이후 이삭은 43년을 더 삽니다. 야곱은 그의 형 에서의 마음에 이처럼 증오를 일으키면서까지 그의 축복을 가로채서는 안 되었습니다. 야곱처럼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세속적인 가치관입니다. 야곱이 천하만국의 영광을 얻기 위해 이와 같은 세속적 가치관을 따른 결과는 에서의 불타는 증오와 가정의 파괴입니다.리브가는 에서의 복수 계획을 전해 들은 후, 야곱을 친정 오빠 라반의 집으로 도피시키기로 합니다. 에서의 분노가 사그라질 때까지 야곱을 외삼촌의 집에 머물게 하려고 했습니다. 리브가는 에서의 마음이 안정되면 야곱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시 데려오겠다고 말합니다. 리브가는 몇 날이 지나서 에서의 분노가 풀려 야곱이 에서에게 한 일을 잊어버릴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시간이 모든 상처를 해결하여 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분노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는 앞으로 계속되는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리브가가 간단하게 생각한 이 문제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46절에, 리브가는 이삭을 설득하여서 자신이 아닌 이삭이 야곱을 라반에게 보내는 것으로 일을 꾸밉니다. 리브가는 이삭에게 가서 에서의 아내들에 대해 원성을 높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고부간의 갈등도 있었을 것입니다. 리브가는 야곱도 에서와 같이 헷 사람의 딸들과 결혼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면서,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갈 명분을 만듭니다. 이삭도 헷 족속 며느리들에 대하여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했기에(창 26:35) 리브가의 술수는 이번에도 통합니다. 야곱의 권모술수는 그의 어머니 리브가로부터 배운 것일 것입니다. 리브가는 문제를 정직하게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거짓과 임기웅변으로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늙고 흐려진 그의 시력만큼 그의 판단도 흐려져서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고 아내 리브가의 술수에 번번이 당하였고, 리브가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가정의 불화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야곱은 속임수로 형 에서가 받아야 하는 축복을 빼앗고, 에서는 복수심에 불타서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이 가정에 벌어진 사건에 대하, 이 가정의 어느 누구 하나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삭과 그의 가족의 모습은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의 본보기였습니다. 축복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이루는 수단으로서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이 다 정해놓고서 하나님은 단지 그 소원을 이루는 수단이나 조력자로 전락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우리의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천하만국에 연연하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붙잡으려 할수록, 어떤 수단과 방법도 마다하지 않게 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우리가 따라야 할 진리가 아닙니다. 삶의 자리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을 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자신의 역사를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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