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3 사 14:24-15:9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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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이사야 14장 24절-15장 9절)
오늘 본문은 역사의 요동함 속에서 “과연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명확한 대답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주전 8세기, 근동 지역을 제패하던 가장 무서운 대제국은 바로 “앗수르”였습니다. 앗수르의 군사력은 철기 무기로 무장하였고 잔혹함과 압도적인 힘을 자랑했으며,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어 보였습니다. 동시에 남 유다 동쪽편에 있는 “모압”은 천혜의 요새와 풍부한 농산물, 무역을 바탕으로 경제적 풍요와 우상 숭배 문화 속에서 깊은 교만을 품고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던 대제국 앗수르가 하나님의 한 번의 손길에 꺾일 것이다.” (14:24~27) 또한 “평화로워 보이고 풍요롭게 보이던 모압이 단 하룻밤 사이에 황폐해지고 피투성이가 될 것이다.”(15:1~9)라고 선포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꺾이지 않는 “경영하심”을 깨닫고, 우리가 의지하던 육신의 교만함과 세상의 우상들을 내려놓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4절에,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고 말씀합니다. “경영”은 단지 단순한 바람이나 추측이 아니라, “완벽한 의도와 지혜로 세운 작정과 목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고 “맹세”까지 하십니다. 25절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에 대해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역사적으로 앗수르는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했지만, 히스기야 왕 시절 여호와의 사자가 단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쳐서 멸망시켰습니다(37:36). 27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왕도, 재물도, 악한 영의 권세도, 하나님의 경영을 폐하거나 그의 펴신 손을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업적이나 세상의 배경이 우리의 인생을 영원히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습니다. 역사를 움직이시고 내 인생의 거친 파도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경영”을 절대 신뢰해야 합니다. 이사야 14장 24절의 선포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강력한 영적 무기입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우리는 때때로 인생의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이 정말로 나를 기억하고 계신가?”, “내 삶의 문제들을 하나님이 정말 해결할 수 있으실까?”라는 의심에 빠집니다. 주변의 악인들이 형통하고 세상의 권세가 나를 압박할 때 두려움에 떨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 분은 세상의 힘과 권력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경영하셨고, 그분의 경영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 또한 우리 교회를 향해 거룩한 뜻을 경영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어떤 방해 세력도, 악한 마귀의 궤계도, 또한 경제적 난관도 하나님의 펴신 손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앗수르의 멍에”는 무엇입니까? 건강의 두려움입니까, 자녀의 미래입니까, 사업의 물질적 압박입니까? 오늘 이 시간, 모든 불안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경영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라고 선포하며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15장에서는 하나님의 시선이 이스라엘 동쪽의 “모압”으로 옮겨집니다. 그들은 천혜의 요새와 성읍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룻밤에”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절에 “하룻밤에”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반복됩니다.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평화와 안전을 확신하고 있을 때, 회개할 기회조차 없을 만큼 갑작스럽고 철저한 심판이 임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2-4절까지는 심판이 들이닥쳤을 때 모압 사람들이 보여주는 처절한 절망을 묘사합니다. 모압 사람들은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의 산당으로 올라가 울부짖습니다. 평소에는 우상이 자신들에게 복 주고 지켜줄 것처럼 믿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위기가 찾아왔을 때는, 사람이 만든 우상은 그들을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평생 공들여 쌓았던 우상 신전은 통곡하는 장소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나는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달려갑니까, 아니면 세상의 “산당”(15:2)으로 달려갑니까?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모압 성”은 무엇입니까? 하룻밤 사이에 사라질 유한한 것들에게 우리의 영혼을 맡기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9절에,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대로, 이스라엘과 오랜 애증의 관계였으며 교만한 앗수르의 디몬, 즉 디본은 하룻 밤 사이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사륙당한 자들의 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사자를 모압의 피난한 자와 그 땅에 남은 자에게 더 보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8절에서, “부르짖음이 모압 사방에 가득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5절에, 매우 놀라운 말씀이 등장합니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이 구절에서 부르짖는 “내 마음”은 이사야 선지자의 마음이자, 동시에 비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이방 민족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멸망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에스겔 33장 1절에, (겔 33:11). 심판을 행하시면서도 부서지는 그들의 모습에 아파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입니다. 그러나 공의의 심판은 거두어들이지 않습니다. 재앙을 피해 겨우 목숨을 건진 남은 자들에게 굶주린 사자가 엄습하듯, 하나님의 심판을 인간의 지혜나 힘으로는 결코 피할 수 없음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세상의 재물과 요새를 피난처로 삼을 때, 그것의 결과는 사막과 같은 결핍과 끝없는 절망일 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모아둔 재물과 쌓아둔 공로(사 15:7)는 영혼의 위기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만이 우리를 죄와 심판에서 건져내시는 유일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도망치는 것은 성도가 누리는 “진정한 특권”입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상한 심령으로 방황하지 말고,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의 그늘 아래로 달려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세상의 요새가 아니라, 변함없이 우리를 향한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맹세와 약속”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보좌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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