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6 사 18:1-19:15 조용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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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이사야 18장 1절-19장 15절)
오늘 본문에서, 남유다는 거친 파도처럼 밀려오는 역사의 위기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 나를 구원해 줄 재정적인 수단, 혹은 나의 안전을 보장해 줄 인간관계를 찾아 나섭니다. 오늘 본문에서 남유다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당시 앗수르는 정복의 칼날을 서남쪽을 향해 펼치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강대국이었던 구스는 앗수르를 저지하기 위해 남유다에 사신을 급히 파견하고 뒤이어 등장하는 애굽은 자신의 오랜 문화와 지혜, 나일강의 풍요를 자랑하며 남유다 백성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생각했습니다. “저 거대하고 장대한 구스 군대와 손을 잡으면 우리가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애굽의 지혜와 물질에 의지하면 이 위기를 넘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사신단을 돌려보내라. 나 여호와는 사람의 손이나 세상의 동맹을 통해 역사하지 않는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삶에서 의지하던 “구스”와 “애굽”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역사의 무대 뒤에서 조용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2절에, 구스는 강한 군사력을 가졌고, 반(反)앗수르 동맹을 맺고자 열방으로 사신을 보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구스의 이 제안은 최고의 생존 전략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3절에서, 남유다에게 구스의 사신단을 거절하고 고국으로 돌려보내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앗수르가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노력이 헛된 것임을 말씀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굳게 붙들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역사의 흐름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외에 다른 나라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소란스러운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세상은 매우 시끄럽지만,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조용히” 세상의 역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 우리는 “주님, 왜 잠잠하십니까?” “주무십니까?” “왜 방관하십니까?”라고 주제넘게 항의하곤 합니다. 그러나 단번에 심판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 우리는 오히려 감사하고 의지하면서 인내함으로 그의 때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가 깨닫지 못할지라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소리가 존재하듯이, 그리고 주어진 시간이 흘러가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 동안, 우리를 바라보시고 감찰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는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타이밍을 위한 “거룩한 침묵”입니다. 18장의 결론은 놀라운 반전입니다. 남유다가 구스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구스가 하나님이 행하신 권능을 보고 예물을 들고 시온산으로 찾아왔습니다. 구스는 하나님께서 연약한 유다를 위하여 이루신 큰 역사를 보고 그들의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와 경외와 감사함의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스를 심판에서 제외시키시고 그 땅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구스와 앗수르는 모두 같은 이방민족들입니다. 그런데 구스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과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기회를 무시하지 않고 경외함과 감사함으로 받았지만, 앗수르는 그것을 무시하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고난은 불신자나 연약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기회입니다. 불신자에게는 하나님께 오라는 기회로, 연약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의 성장의 기회로 말입니다. 이러한 고난상황에서 더 악한 자의 길로 가서 심판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경외와 감사의 예물을 드림으로 구원을 얻든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올바른 선택을 통해 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사야 19장은 세속적 풍요와 지혜의 상징인 애굽에 대한 심판을 다룹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하나님을 대체하는 “거짓 구원자”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모두 이런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믿는 구석’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믿는 구석’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애굽에게도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지혜와 역사와 문화입니다. 그리고 그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는 구석이었습니다. 그들은 기근을 겪거나 외세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애굽 땅으로 내려가 도움을 얻고자 했습니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했습니다. 이사야 31장 1-3절에, 하나님은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에게 돕는 자가 되려고 하는 애굽 사람들 모두가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절에, 하나님의 심판은 애굽의 백성을 두렵고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당황한 애굽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내전’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심판은 애굽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두려움은 그들의 심장을 녹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놀라운 일을 본 이후에 따라오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소식에 대하여 애굽이 보여주는 모습은 구스가 보여주었던 모습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는 앗수르의 군대가 망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지만, 애굽은 마지막으로 의지할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는 구석’, 즉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던 우상들과 신접한 자들에게 두고 있습니다. 목적을 하나님께 두지 않은 인생의 결론은 결국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근과 탄식의 시간이 이르기 전에 인간의 무기력함을 인정하며, 오직 천지를 지으시고 역사의 주권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설사 지금 심판 중에 있다고 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자랑하는 ‘믿는 구석’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하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기꺼이 그의 심판의 칼을 거두시고 이사야 19장 22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우리를 고쳐주실 것입니다. 지금 고요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환경이 더디 변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보좌에서 정교하게 역사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귀를 닫고, 오늘 조용히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을 마시며,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거룩한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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