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13 사 25:1-12 눈물을 씻기시고 잔치를 베푸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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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씻기시고 잔치를 베푸시는 하나님 (이사야 25장 1-12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혹시 ‘불안’과 ‘피곤함’, 그리고 ‘끝없는 긴장’은 아닙니까? 우리가 뉴스를 열어보면 늘 들려오는 소식은 전쟁, 경제적 위기, 갑작스러운 재난, 그리고 인간관계의 파탄과 질병의 소식들입니다.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 닦이지 않는 눈물,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는 말 못 할 수치와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4장에서는 세상의 죄악으로 인해 온 세상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운 심판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세워진 모든 견고한 성읍들이 무너지고, 세상의 모든 기쁨이 멈추어지는 암울한 광경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25장에서 분위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절망과 통곡의 골짜기를 지나온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완벽한 구원의 잔치”를 선언하십니다. 1절에, 잔치가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하나님을 향해 위대한 찬양을 올립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대충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옛적(창세 전에) 정하신 뜻대로”, 즉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2절과 3절에, 세상을 호령하던 교만한 포악한 나라들의 성읍들을 돌무더기로 만드셨습니다. 자칭 견고하다고 자랑하던 세상의 시스템, 돈의 성벽, 권력의 성벽, 인간의 교만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한순간에 허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은 누구의 성벽이 되어주십니까? 4절에, 세상이 볼 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궁한 자”,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은 견고한 요새가 되어주시고, 거친 폭풍을 막아주는 피난처, 타는 듯한 폭양을 가려주는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에 어려운 일이 생기고 감당하지 못할 시험이 생긴다고 해도 하나님의 눈이 나를 향해 있음을 깨닫고, 그가 나를 돌보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유와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항상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신실하시고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악인을 심판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심판 너머에 하나님이 진짜 준비하신 것은 “연회(잔치)”입니다. 6절에, 하나님이 은혜의 성산(시온산)에서 베푸시는 잔치는 소수의 특권층만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만민을 위하여” 열리는 잔치입니다. 그 잔치에는 최고의 음식인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랜 세월 숙성된 “맑은 포도주”가 차려집니다. 이 잔치에서 하나님은 인류를 짓누르던 세 가지 거대한 절망을 완벽하게 제거하십니다. 1) 가리워진 덮개(영적 무지와 어둠)를 없애십니다.(7절) 2)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입니다.(8절a) 3)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의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실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극복할 수 없는 최종의 원수가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망을 완전히 삼켜 버리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얼굴에서 직접 닦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억울하게 당했던 수치, 죄로 인해 입었던 수치, 인생의 실패로 인해 느꼈던 모든 부끄러움을 온 천하에서 깨끗이 지워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잔치와 구원을 경험한 성도들은 모두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도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약속은 받았으나 현실은 여전히 암담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했지만 즉각 응답되지 않고, 악인의 형통함이 눈에 보일 때 성도는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마침내 그날이 오면, 우리는 고백할 것입니다. “보라! 이분이 바로 우리가 눈물 흘리며 기다려온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셨다!” 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자랑하던 교만한 자들의 결말은 어떠합니까? 10-12절에, ‘모압’을 비유로 듭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의 이웃이었으나 늘 교만하고 자고했던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모압이 마치 거친 거장(수영선수)처럼 헤엄쳐 나오려고 손을 펼치겠지만, 그들의 교만함과 손의 기교를 바닥으로 누르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견고한 성벽은 헐려 땅에 엎어지고, 결국 흙먼지 속으로 굴러떨어질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쌓아 올린 모든 성벽은 먼지가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다리고 의지하는 자만이 영원한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의지하는 세상의 “견고한 성”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는 은연중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만의 성벽을 쌓으려고 합니다. “이 정도의 재정만 있으면 안심이겠지””, “이 정도의 위치에 올라가면 내 미래가 보장되겠지?”, “내 아이가 이 정도 대학만 가면 내 수치가 가려지겠지?”라며 자신의 힘으로 성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경고합니다. 포악자와 교만한 자의 성벽은 하나님께서 한순간에 돌무더기로 만드십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세상의 성벽들은 영원한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던 마음의 성벽이 있다면 내려놓으십시오. 오직 가난하고 빈궁한 자들의 요새가 되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여러분의 유일한 피난처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고난의 현장에서 십자가의 “잔치”를 바라보십시오. 이사야가 예언한 이 구원의 연회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의 포도주를 흘리셨고, 당신의 살을 찢어 영원한 생명의 떡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큰 원수인 사망을 영원히 멸하셨습니다. 지금 혹시 수치와 눈물 가운데 계십니까? 나의 무능함 때문에, 가정의 깨어짐 때문에, 질병의 고통 때문에 밤마다 눈물짓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어린양 잔치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말씀과 기도 속에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길 원하십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의 수치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고,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옷을 입었습니다. 셋째로, 거룩한 인내로 “주를 기다리는 삶”을 사십시오. 기다림은 힘듭니다. 그러나 성도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관”이 아닙니다. 말씀을 붙들고, 이미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성실하신 하나님을 오늘 내 삶에서 찬양하며 참아내는 “거룩한 소망”입니다. 지금 응답되지 않는 기도로 인하여 낙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정하신 뜻을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시계는 단 한 번도 오차가 없으셨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주를 기다릴 때, 마침내 구원의 기쁨으로 웃게 될 날이 반드시 올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때로 폭풍우가 치는 들판 같고,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사막과 같습니다. 견고해 보이던 세상 것들은 모두 무너져 내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슬퍼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확신을 주십니다. “세상의 성벽은 무너질지라도 나는 너의 영원한 요새다. 내가 너를 위해 영원한 생명의 잔치를 준비했다. 네가 홀로 흘렸던 그 서러운 눈물, 그 깊은 수치와 아픔을 내가 직접 닦아주겠다. 조금만 더 나를 기다려 주겠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망은 이미 패배했습니다. 우리의 수치는 지나갔습니다. 마침내 마주할 영광스러운 구원의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당당하게 승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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