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14 사 26:1-27:1 흔들리는 세상에서 누리는 완전한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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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상에서 누리는 완전한 샬롬 (이사야 26장 1절-27장 1절)
오늘 본문인 이사야 26장은 “이사야의 소묵시록(24~27장)”의 핵심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예언을 선포할 당시, 남유다 왕국은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군사 대국 앗수르가 주변 국가는 물론 예루살렘을 향해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절망 그 자체였고, 모든 도시는 곧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이 절망과 공포의 한복판에서 뜻밖의 선언을 합니다. 1절에, 눈앞에 세상의 성벽들이 무너지고 있는데,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우리에게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읍이 있다.”라고 찬양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붙들어야 할 진짜 성읍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걸고 의지할 구원의 성벽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통해, 세상의 폭풍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완전한 평강(샬롬)”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절에,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라고 선포합니다. 사람들은 바벨탑처럼 성벽을 높이 쌓으면 자신들이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실”것입니다.(4-5절) 진정한 안전은 콘크리트나 돌로 쌓은 성벽에 있지 않습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자체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가장 완벽하고 안전한 성벽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견고한 성읍 안에서 거하는 자가 누리는 복은 무엇입니까? 3절에, “평강하고 평강하도록”은 원어로, “샬롬 샬롬”입니다. 단순히 “문제나 전쟁이 없는 상태” 정도가 아니라, “완벽하고, 풍성하며,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깨뜨릴 수 없는 절대적인 평안”을 의미합니다. “샬롬 샬롬”을 누리는 조건이 무엇입니까? 바로 “심지가 견고한 자”입니다. “심지”는 우리의 “생각, 마음의 태도, 영적인 초점”을 의미합니다. 즉, 마음의 방향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4-8절에,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란, “영원한 반석 되시는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 겸손하고 정직하여 의인의 길을 걷는 사람, 주를 기다리고, 주를 기억하며, 주를 사모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주님 안에 거하며 주의 영광의 빛을 비추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이끄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기초가 세상의 재물이나 사람의 인정을 의지하고 있다면, 작은 시련의 바람만 불어도 우리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의 닻을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께 깊이 내리고 있을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샬롬 샬롬”의 은혜가 우리의 영혼을 지키게 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어두운 밤'을 지나게 됩니다. 건강을 잃었을 때, 사업이 휘청거릴 때, 사랑하는 이와 이별했을 때, 자녀의 문제로 인하여 뼈를 깎는 아픔을 겪을 때 우리의 영혼은 밤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밤의 순간에 성도가 가져야 할 태도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9절에, 심지가 견고한 사람의 진가는 낮이 아닌 밤의 시간, 고난의 떄에 나타납니다. 그는 고난의 시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다리며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난의 시간에,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간절히 구합니다. 그런 심지가 견고한 사람의 길을 주님께서 평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악인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실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어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먼저 악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10-13절에,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사람,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주의 경고를 보지 아니하다가 결국 불에 사라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14절에,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시므로 그들이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다시 일어나지 못할”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18절에,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게”됩니다. 이 얼마나 비장하고 솔직한 고백입니까? 아이를 낳기 위해 10달 동안 고통을 견디며 진통을 겪었는데, 막상 산실에서 나온 것은 아이가 아니라 그저 “바람”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인생의 평안을 찾아보려고 몸부림치며 흘린 땀과 눈물이 결국 허무한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는 고백입니다. 깊은 늪에 발이 빠진 사람을 상상해 봅시다. 그는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발을 굴리고 몸을 비틀수록 허우적거릴수록 그의 몸은 더욱 빠르고 깊게 늪 속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들이 오히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빠져나가려는 것을 멈추고, 밖으로부터 밧줄을 던져주는 사람의 손을 붙잡는 것뿐입니다. 혹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람'을 낳는 허무한 발버둥을 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내가 나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할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의 구원의 손을 바라봅시다. 악한 인간의 모든 노력이 “바람”으로 끝나는 절망의 순간, 하나님은 놀라운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19절에, 말라붙어 죽어버린 땅에 새벽이 되면 소리 없이 “빛난 이슬(이슬의 은혜)”이 내려와 초목을 살려내듯,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 절망의 티끌 속에 누워있는 주의 백성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구약의 이 환상은 훗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20절에, 심판의 날, 폭풍이 몰아치는 그날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향해 초청하십니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밀실”은 어디입니까? 바로 우리의 기도의 골방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방주 안입니다. 세상의 모진 풍파가 너무 거세어 감당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세상에 나가 맞서 싸우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밀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문을 닫아걸고 세상의 소리를 차단한 채,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숨어 주의 진노와 세상의 풍파가 지나가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27장 1절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그 마귀의 세력, 죄와 사망의 권세를 반드시 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영적 전쟁의 결말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승리입니다. 이미 이긴 승리의 혜택을 하나님은 우리가 누리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위대한 구원의 성읍 안에서 날마다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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