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20 사 30:1-17 잠잠하고 신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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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고 신뢰하라 (이사야 30장 1-17절)
우리는 저마다 인생 가운데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풀며 살고 있습니다. 매순간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는 스스로 많은 질문들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지?”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 되겠지?”라며 많은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장 바람직한 우리의 질문의 태도는 하나님께 이런 질문들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 내가 잘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문제를 어떻게 해결되게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유다의 백성들의 태도는 이와 같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미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여 어운 곳에서 자기의 지혜를 의지하여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애굽의 도움을 얻고자 애굽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음에도 그들은 무시하고 계속 자신의 길로 갔습니다. 이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1절에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유다의 백성들을 ‘패역한 자식들’(1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패역한 자식들입니까?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1절)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1절)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2절)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어두운 곳에서 “계교(계획, 목적)를 베푸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은 애굽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이것은 “죄에 죄를 더한 것”(1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불신앙이 얼마나 깊은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어떠한 위기가 닥쳐오면 가장 먼저 찾아야 할 분은 하나님인데 그를 외면하고 자신들의 꾀를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신뢰하지 않은 유다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애굽과 맹약을 맺었고 하나님이 아닌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당시에 애굽이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고 나아갔습니다. 6절에, 이처럼 애굽의 도움을 얻기 위해 애굽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을 ‘암사자, 수사자, 독사,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 광야를 지나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의 위험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런 위험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때 만족해하십니다. 하나님은 3절에서, 유다의 백성들이 애굽의 도움을 얻고자 하지만 오히려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5절에,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된다.”고 하시고, 6절에 애굽은 “무익한 민족”이라고 하시면서 마침내 7절에,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애굽은 “가만히 앉은 라합”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라는 말은 아무런 능력도 없다는 뜻입니다. 애굽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는 일은 참으로 무익하고 헛된 일임을 가르쳐주십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힘이나 권세를 의지하는 길은 무익하고 헛된 일입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시편 146편 3-4절에,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느헤미야 8장 10절에,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힘이십니다. 이 세상의 역사를 경영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을 의지하는 것은 전래동화인 ‘햇님과 달님’에 나오는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려고 했던 무모한 호랑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무시하고 어두움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계획들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9절에,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유다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교훈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19장 5-6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그들은 어떤 행동을 했을까요? 첫째로, 10절에서 선견자들과 선지자들에게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른 것인데 그것을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절에서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을 업신여기고 압박(애굽의 군사력을 의지하기 위해 백성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은 것)과 허망(애굽의 군사력을 의지하는 길로 가는 것)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는 길을 간다고 하십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둘째로, 10절에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요구대로 말을 하라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아첨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 일부러라도 그렇게 꾸며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11절에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가까운 길. 지름길) 돌이키라.”고 합니다. ‘바른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들이 가는 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막지 말고 비켜주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합니다. 그들 앞에서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지 말고, 떠나시게 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패역한’ 길입니다. 그 마음에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싫증을 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져도 업신여기면서, 자신들에게 아첨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든지 존재하고 있는 요구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라’고 요청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4절에,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애굽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러합니다. 13절에, 높은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지듯이 하나님께서 무너뜨리는 심판을 순식간에 행하십니다. 14절에서,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심판하십니다. 실제로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철저하게 유다는 깨뜨림을 당합니다. 그리고 16-17절에서, 그들은 도망을 치는 길을 갑니다. 한 사람이 꾸짖어도 천 사람이 도망을 합니다. 신명기 28장 15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르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언약적 저주의 말씀이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생명의 삶 안에 거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잠잠히 그를 바라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요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길만이 진정으로 생명의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길만이 사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사는 복이 우리의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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