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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

260824 사 33:1-16 주를 앙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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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샘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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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앙망합니다. (이사야 331-16)

정의를 믿으십니까? 이 땅 위에 정의가 있다고 믿으십니까? 우리가 행한 대로 값을 치룬다고 생각하십니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똑같은 일에 대해 어떤 사람은 죄를 받고 다른 사람은 죄를 받지 않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절망스럽고 기쁘지 않은 것입니까? 얼마나 세상은 많은 모순과 부조리로 인해 살아가기가 힘든 곳입니까?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부조리하고 모순된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이 어떠함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가장 절대적인 조건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조건은 바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은 온통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하다고 하여도 여전히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런 해를 끼치지도 않은 대상에게서 해를 받는 억울함으로 가득한 그런 인생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그가 정의의 하나님이시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그를 의지하고 사는 인생에는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한 가지 분명한 흐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참으로 세상은 모순되고 악하고 엉망진창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일 뿐입니다. 세상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아무리 모순된 세상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그가 갚아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에, 33장은 화 있을진저로 시작됩니다. 33장에서 의 대상은 1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위협하는 앗수르입니다. 2차적으로는 학대나 속임을 당하지 않고도 상대를 학대하고 속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억울하고 힘듭니까? 그들의 행위도 억울한데 그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힘듭니다.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그들의 행위를 갚아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절에, 학대와 속임을 당한 사람이 하나님께 은혜와 구원을 간구합니다. 억울하게 학대나 속임을 당할 때 제일 먼저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구원은 스스로 연약하다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에게 팔이 없음, 즉 능력이 없음을 고백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팔이 되어 주십니다.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아침마다 능력의 오른 팔이 되어주시고 모든 환난 가운데 우리를 지키시는 구원이 되어 주십니다. 3-4절에, 눈에 보이는 상황은 어두움의 권세가 이 세상을 온통 뒤덮는 듯이 보입니다. 이 세상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죄악을 합법화하는 악법들을 제정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고자 겁 없이 달려드는 무리들입니다. 그러한 악인들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연히 일어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던 악인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함부로 학대하고 속이던 앗수르와 같은 악인들을 매미나 매뚜기처럼 한순간에 사라지도록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5-6절에,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들을 벌하심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학대와 속임을 당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평화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으로 지혜와 지식이 풍성해 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어려움 가운데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공경해야 할 대상이 하나님이심과 하나님을 믿음이 정말 보배임을 깨달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말세의 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함의 가치가 점점 중요하게 느껴지는 때입니다. 이 말세의 때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며 그것을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소중한 보배를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바꾸거나 하나님을 배신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기를 바랍니다. 7-9절에, 왜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용사들은 앗수르에 의해 짓밟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연약함을 알고 앗수르와 화평하고자 그들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의 힘을 두려워하고 의지하였을 때, 그들은 자신들을 속이는 자로 변하는 앗수르에 의해 고통을 당하여 슬퍼하게 됩니다. 모든 영역이 무너짐으로 그들의 인생에 자유와 평화가 사라질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과 타협해서는 절대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우리의 안전은 세상과의 타협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보장됩니다. 시편 168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성도가 악의 세력을 굴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은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적인 노력을 중단하고 잠잠히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늘 내 앞에 모셔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과 곤고함 가운데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모든 환란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10절에, 온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는 그 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어나실 것입니다. 악인들이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부끄럼 없이 담대히 죄악을 행하고 그것을 서슴없이 자랑하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게 되는 그 때에 모든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주께서 강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실패하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를 잠잠히 기다리셨다가 그들이 굴복하는 순간에 드디어 일어나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11절에, 하나님은 일어나셔서 유다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 먼저 그들을 학대하였던 앗수르를 심판하십니다. 그들이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13절에, 온 열방이 주께서 행하시는 기이한 일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내가 행한 것을 들으라.”는 말씀은 세상의 소리들을 차단하고 주님의 권능을 보고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흐리게 하는 수많은 세상의 소리들을 차단하고 오직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며 주님의 권세와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함으로 주님의 일하심을 믿으며 담대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힘 있게 감당해야 합니다. 14절에, 시온의 죄인들은 거룩한 영역에서 거룩하게 살아간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거룩한 영역, 교회에 속해 있다고 말하면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면 시온의 죄인들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룩한 지역, 시온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 죄인들과 경건하지 않는 자들이 앗수르의 불의 심판을 보고 두려워 떨며, 누가 이것을 견딜 수 있겠느냐고 외칩니다. 우리는 거룩한 자리에 있으나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아닌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경건하지 못한 모습들에 대하여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영영히 타는 불의 심판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습니다. 15절에, “견딜 수 있는 자란 과거 옳지 못한 삶을 살았지만 그 삶에서 돌이켜 의의 길을 갈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불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며 여러 가지로 힘든 당하며 살고 있지만 나 혼자만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모두가 광야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지난날의 잘못되 모습들을 회개하고 바로잡게 하는 매우 귀중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연단의 과정을 통과하여 정금과 같은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우리의 인생에 견고한 바위가 되어주십니다. 먹을 양식을 공급하시며 생수가 끊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연단의 시간은 힘들지만, 그것을 통과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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