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27 사 36:1-22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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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이사야 36장 1-22절)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 힘과 의지로는 도저히 막아서거나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의 파도”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기며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지고 평생 쌓아온 사람에 대한 신뢰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때, 우리는 깊은 두려움과 절망에 빠집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 36장은 바로 남유다가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강국은 앗수르였습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BC 722)했고, 이제 앗수르 왕 산헤립은 남유다마저 삼키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1절에, 남유다의 방어선이었던 46개의 모든 성읍이 무너졌고,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예루살렘 하나뿐이었습니다. 2절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최고 사령관이자 대변인인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그는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남유다의 백성들과 관리들을 향해 영적 심리전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랍사게가 남유다 백성들에게 던진 말은 단순한 군사적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과연 너희를 구원할 수 있느냐?”라는 믿음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우리는 랍사게의 간교한 음성과 이것에 반응하는 히스기야와 백성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삶의 위기 속에서 어떠한 자세로 믿음을 지켜내야 할지에 대한 3가지 영적 원리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로, 세상은 우리의 믿음을 흔듭니다. 4절에, 랍사게가 남유다의 백성들에게,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랍사게는 남유다가 의지하는 모든 것들을 무력화시킵니다. 5절에,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고 말합니다. 6절에,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아서 의지하면 도리어 손이 찔릴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7절에,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도, “너희가 섬기는 신이 너희를 돕겠느냐?”라고 조롱했습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에 의한 예배 개혁을 오히려 여호와의 분노를 산 행위로 왜곡합니다. 그러면서 10절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올라가 유다를 쳐서 멸하라고 하셨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옛날에 휴전선에서는 확성기나 전단지(삐라)를 통하여 상대방 군사들을 현혹하거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전쟁이 발발하여 총알에 맞아 죽기 전에, 이 “입으로 불어 넣는 절망의 소리”에 현혹되어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자녀를 공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역시 “외적 고난” 그 자체가 아닌,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다.” “너의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음성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우리에게 랍사게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네가 날마다 기도하고 예배드린다고 해서 네가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더냐?” “네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왜 너에게 이런 질병과 고통을 주시겠느냐?” “너의 신앙은 그저 위선이고, 네가 의지하는 믿음은 오히려 너를 괴롭게 하는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다.” 랍사게가 한 말의 특징은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는 것입니다. 남유다가 애굽을 의지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었고, 남유다의 군사가 앗수르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랍사게는 “현실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믿음을 삭제해 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논리와 숫자, 절망적인 환경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의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눈앞의 “상황”을 보지 마시고, 상황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조롱과 유혹의 목소리를 경계하십시오. 11절에, 랍사게의 고도의 심리전에 위기감을 느낀 남유다의 대신들(엘리아김, 십나, 요아)은 랍사게에게, “우리가 아람 방언을 아오니 청하건대 그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하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에서 우리에게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마소서.”라고 애원합니다. 그런 반응을 본 랍사게는 더욱 악의적으로 성 위에 있는 일반 백성들을 향해 히브리어로 크게 소리 지릅니다. 랍사게는 14-18절에,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고 그의 말에 속지 말라고 3번이나 강조하면서, 앗수르 왕에게 항복하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얻게 될 것이라며 거짓 평화와 화친의 제안을 합니다. 앗수르가 정복한 민족들을 다른 땅으로 강제 이주(Deportation)시켜 그 민족성을 정체성까지 짓밟았던 역사적 사실을 숨긴 채, “그곳도 포도주와 떡이 있는 좋은 땅”이라고 미화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세상의 우상 신들과 동일시하며 모독합니다. 18절에,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라고 말합니다. 생명이 없거나 실재가 없는 우상과 살아계신 하나님을 비교하며, 남유다 백성들만이 아닌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은 거짓된 말로 성도들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달콤한 타협의 말로 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나님을 떠나 세상과 타협해서 얻는 모든 풍요와 안정은 결국 우리의 영혼을 마비시키고 세상의 노예로 만드는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세상의 조롱하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겁내지 마십시오. 셋째로, 잠잠히 하나님께 나가십시오.랍사게의 거창하고 위협적인 연설이 끝났을 때, 성 벽에 서 있던 유다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21절에, 히스기야 왕은 랍사게의 공격에 대하여 이미 백성들에게 지혜로운 명령을 내려두었습니다. “랍사게의 말에 아무 말도 대답하지 말라.” 백성들은 랍사게와 맞서 말싸움을 하려거나, 분노하여 흥분하거나, 변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침묵했습니다. 그것은 무기력한 포기가 아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거룩한 침묵”이었습니다. 세상의 비방에 인간의 경험과 말로 맞대응해 보았자 혈기만 나타나고 적의 꾀에 빠질 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신들은 옷을 찢고 히스기야 왕에게 돌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했습니다(22절). “옷을 찢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깊은 회개와 슬픔으로 오직 여호와의 도우심만을 구하는 전적인 순복의 태도입니다. 이어지는 37장에서 히스기야는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6절에, “너는 앗수르 왕의 신하들이 나를 모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하룻밤 사이에 멸하시는 놀라운 구원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고난이 닥쳐올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잠잠하십시오. 시편 46편 10절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소리, 조롱의 소리, 두려움의 소리 앞에서 입을 닫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둘째, 옷을 찢으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세상의 거대한 도전 앞에서 우리의 옷을 찢어야 합니다. 즉, 내 교만과 자아를 찢으며, 하나님 앞에 통회와 자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처럼 굵은 베옷을 입고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발 앞에 문제를 내려놓으십시오. 우리가 잠잠히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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