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03 삿 1:22-36 절반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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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승리 (사사기 1장 22-36절)
오늘 본문은 요셉 지파의 승전보로 시작하지만, 그 후에는 모든 지파들이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기세에 밀려서 그들과 같이 살기를 모색하며 타협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들로부터 쫓겨나는 일들까지도 생겨났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의 손에 넘겨주신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처럼 가나안 사람들의 철 병거를 본 이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하나님을 불신하며 싸움을 포기하거나 가나안 사람들과 협상을 하고 그들과의 동거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22절에, ‘요셉 가문’,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여호수아 16장에서, 기업을 함께 받았으므로 연합하여 벧엘 정복에 나섰음이 틀림없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의 말씀은 요셉 가문이 벧엘을 성공적으로 정복하게 된 원인이 근본적으로 여호와께 있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구약 성경을 읽을 때 좋은 습관은, 전쟁 당시 그들이 하나님께 묻거나 기도 였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쟁의 끝을 살펴보지 않아도 우리는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전쟁은 언제든지 승리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적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이 사실을 믿고 나아간다면 반드시 그들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이미 이기는 전쟁으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이것을 믿지 못하고 싸움을 두려워하여 피한다면 그들은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22절의 요셉 가문 또한 벧엘을 치러 올라가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7절에,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항상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 가문 또한 그들의 전쟁은 승리하는 전쟁처럼 보이다가 끝에 가서 그렇지 않은 절반만 승리한 전쟁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절반만 믿었기 때문입니다. 23절에, 요셉 가문은 벧엘을 정복하기 전 그곳을 정탐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가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칠 때에는 정복할 성읍들을 정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지만, 요셉 지파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성읍들을 정탐하였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출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혜와 방법을 의지하였습니다. 24절에, 정탐꾼들이 성읍에서 한 베델 사람을 만나 입구를 보이라고 하며 정복하면 그와 그의 가족들을 살려주겠다고 거래했습니다. 요셉 지파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정탐꾼의 도움을 받았고 도움을 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인간적인 보답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시작은 믿음으로 하였지만 과정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의 말씀에 불순종한 절반만의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그 베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이름을 ‘루스’라고 하였습니다. ‘루스’는 “길을 잘못 들다, 이탈하다.”의 뜻입니다. 창세기 28장 19절을 보면,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치다가 하룻밤을 지내게 된 이곳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고쳐서 불렀습니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 하나님으로부터 이탈된 삶을 살던 사람이 이곳 하나님의 집에서 엘샤다이, 즉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벧엘 사람은 다시 그 성의 이름을 ‘루스’로 다시 바꾸어 부르는 것입니다. 벧엘을 정복한 요셉 지파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 지파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27절에, 므낫세 지파가 담당지역의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군사력이 가나안 사람들보다 약해서 그랬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이 정복하는 곳마다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장 2-3절에,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고 말씀합니다. 27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성읍들은 모두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들이 주로 거주하던 곳으로 교통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들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결심하고 거주하였다.”는 말씀은 이처럼 중요한 장소들인데 므낫세 지파의 정복 의지가 그만큼 강하지 않아서 가나안 사람들이 그냥 계속 살기로 작정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28절의 말씀처럼, 나중에 이스라엘이 강성해진 이후에도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을 노역시키는 것으로 타협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이스라엘이 강성해져 충분히 가나안 인들을 쫓아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부려먹기 시작했음을 보여 줍니다. 즉 강성해진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기보다 가나안 인들의 사역을 통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처음에 쫓아낼 수 있을 때, 타협하고 양보하니까, 나중에는 깊게 박힌 돌이 되어 쫓아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그들을 쫓아낼 수 없게 된 것으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로 인해 유혹을 받고 그들의 우상과 풍습을 따름으로 여호와를 떠나게 되었으며 그들 자손들은 여호와를 알지도 못하는 세대가 되어 사무엘이 등장하기 까지 350여 년 동안의 영적 암흑기를 맞게 됩니다. 하지만 그 암흑기 가운데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시시때때마다 사사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참으로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함께 거주하게 된 것은 므낫세 지파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였습니다. 29절에,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30-36절을 보면, 두 가지 내용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하나는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입니다.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이스라엘 안에 거주하면서 노역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노역을 시키는 것으로 그들과 타협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신앙과 문화를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을 배역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악행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22절에,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요셉 가문 외에 다른 지파와는 함께 하지 않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지파들이 하나님과의 동행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요셉 지파의 승리는 전술 전략의 승리가 아니라 “여호와의 승리”였습니다. 반대로, 다른 지파들의 불완전한 승리는 승리하게 하시는 여호와를 외면하고 세상과 타협한 그들의 “영적 패배”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을 완전하게 정복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 민족을 다 쫓아내어 약속하신 기업을 얻기에 이스라엘의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보다 그들의 탐욕을 더 우선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과의 동행을 요청하여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의 비결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생각과 지혜와 욕심보다 더 우선의 위치에 두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완전한 승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나태와 불신앙으로 인한 두려움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싸움을 싸우며 나가기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가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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