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03 고전1:18-31 십자가의 능력을 자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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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능력을 자랑하라(고린도전서 1장 18-31절)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강해져라.” “성공해라.”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 “능력을 보여주어야 인정받는다.” 세상은 화려함을 사랑합니다. 학벌을 자랑합니다. 돈을 자랑합니다. 권력을 자랑합니다. 외모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하셨습니다. 가장 약해 보이는 방법,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방법, 실패자처럼 보이는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선언합니다.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진짜 능력이 무엇인지, 진짜 지혜가 무엇인지, 진짜 자랑이 무엇인지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는 세상 사람에게 미련하게 보입니다.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헬라인들은 철학을 사랑했고, 논리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지혜를 추구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표적, 즉 눈에 보이는 능력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신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다.” 당시 십자가는 영광의 상징이 아닙니다. 저주의 상징이며, 처형의 도구입니다. 수치의 상징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십자가 목걸이, 교회 십자가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 당시에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왕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왕관을 쓰고 등장하는 것이 아닌 죄수복을 입고 등장한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저 사람이 왕이라고?” 십자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완전히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비밀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기 위하여 십자가를 사용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힘으로 구원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해서.” “내가 의로워서.” “내가 남보다 나아서.” 그러나 십자가는 선언합니다. “너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 모든 사람이 동일합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목사도, 처음 교회에 온 사람도, 모두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를 무너뜨리십니다. 19절에, 바울은 이사야 29장 14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한 지혜를 신뢰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이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은 발전했고, 기술은 놀랍습니다. AI도 발전했습니다. 우주도 계속해서 탐사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까? 오히려 더 외롭고, 더 공허하고, 더 불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지혜는 영혼을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인간의 존재를 연구했습니다. 수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기 직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평생 답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지혜는 인생의 일부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21절에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의 복음만이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고 구원시킬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8절에,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의 상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사탄 마귀의 권세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는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일까요? 첫째로, 죄를 용서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웃어도 안에는 죄책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말합니다. “내가 이미 너를 용서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가장 더러운 죄까지 씻으십니다. 둘째로,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술 중독자, 폭력적인 사람,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복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에는 생명을 바꾸고 성품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조폭 출신 목사가 간증했습니다. “나는 사람을 두려움으로 굴복시켰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으로 나를 무너뜨리셨다.” 칼도 못 바꾼 사람을 복음이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27-29절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잘난 사람만 쓰지 않으십니다. 약한 사람, 눈물 많은 사람, 실패한 사람, 상처를 입은 사람도 사용하십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모세는 말이 어눌했습니다. 다윗은 천대받는 막내이자 목동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충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고, 바울은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이어서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스스로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30절에서, 그의 약함을 자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약한 그 때에 하나니의 강하심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요? “나는 가진 것이 너무 없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너무 늦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약한 사람이 하나님을 더 붙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0절에, 바울은 예레미야 9장 23-24을 인용하며,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랑합니다. 돈 자랑, 자식 자랑, 경력 자랑, 외모 자랑. 하지만 그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 첫째로, 예수님의 은혜를 자랑해야 합니다. “나는 잘나서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나는 은혜로 살았습니다.” 이 고백이 진짜 신앙입니다. 둘째로,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교회는 프로그램을 자랑하는 곳이 아닙니다. 복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말했습니다. “나는 가진 것이 없지만 예수님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세상은 이해 못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부요함입니다. 십자가는 상징이 아닌 체험 해야할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겠다는 다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십자가의 본질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뿐입니다. 세상은 강함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를 자랑하십니다. 세상은 성공을 말하지만, 하나님은 희생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높아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느냐?” 돈입니까? 능력입니까? 사람입니까? 세상 지혜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입니까? 십자가는 약해 보이나, 그 안에 구원이 있고, 십자가는 미련해 보이나, 그 안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으며, 십자가는 패배처럼 보이나, 그 안에 영원한 승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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