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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

260713 시 13:1-6 어느 때까지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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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샘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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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까지니이까? (시편 131-6)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하나님, 정말 살아계신가요? 제 기도를 듣고 계시기는 한가요? 왜 제 고난은 끝이 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인생의 바닥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흔히 믿음이 좋으면 늘 기쁘고 평안하기만 할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도 인생의 밑바닥,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받았던 사람이지만, 오늘 시편 13편에서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피를 토하듯 부르짖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다윗처럼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울부짖고 있고 계신다면, 다윗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고 절망이 찬송으로 바뀌는 영적 반전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1-2절에,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1-2절에,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질문을 무려 네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반복은 다윗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다급하고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줍니다. 첫째로,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라는 질문은 하나님과 다윗의 관계적 단절감을 나타냅니다. 지금 하나님이 그를 기억지 않으신다는 영적인 고립감을 나타냅니다. 둘째, “주의 얼굴을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라는 질문은 하나님과 다윗의 시각적 단절감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셋째,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이라는 말은 지금 다윗이 겪고 있는 내면의 고통을 나타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스로를 갉아먹는 내면의 상태임을 타나냅니다. 넷째,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라는 말은 다윗이 당하고 있는 환경적 압박을 나타냅니다. 지금 상황은 악화되고 주변의 조롱은 커지는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고통 중에서, 다윗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사울 왕의 칼날이나 적들의 추격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내가 믿고 의지하였던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만 같은 영적인 고독과 침체, 이것이 다윗이 마주한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3-4절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3절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라는 말은 이제 시의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나타냅니다. 자신의 고통에만 빠져 있던 다윗은, 시선을 들어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냥 여호와가 아니라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릅니다. 비록 지금은 침묵하고 계시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나와 언약을 맺고 계신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세 가지를 구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나를 생각하사(바라보소서)”라고 말합니다. 숨기셨던 얼굴을 다시 내게로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응답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구체적인 개입을 요청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원수를 없애달라는 기도보다, 내 영적인 눈을 밝혀달라고 기도합니다. 눈이 어두워지면 두려움 때문에 사망의 잠을 잘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 고난 저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상황을 바꾸기 전에, 먼저 영적인 눈을 밝혀 하나님을 보게 만듭니다5-6절에,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5절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1-2절에서 울부짖었던 다윗이 갑자기 기쁨과 찬양을 선포합니다. 환경이 바뀌었습니까? 아니면 사울 왕이 추격을 멈추었습니까? 아닙니다. 상황은 그대로이지만, 다윗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5절에서,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언약적인 사랑(Hesed)을 뜻합니다. 내 감정이나 상황은 조석간에 변하지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은 신실하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또한 6절에,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표현을 원어로 보면, 과거시제나 완료시제에 가깝습니다. , “앞으로 잘해주시면 찬양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이미 내 인생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수많은 은혜(은덕)를 기억하니, 지금 이 고난 중에도 나는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는 믿음의 선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13편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인생에 영적 침체가 찾아왔을 때 어떻게 이것을 돌파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영적 원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매우 분명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당하는 삶의 고통을 기도의 자리에서 '정직하게' 탄식하십시오. 많은 성도들이 슬픔에 빠져 낙심될 때, 거룩하고 점잖게, 속으로만 기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 언제까지 숨어만 계실 것입니까? 이제 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라고 정직하게 쏟아내시기 바랍니다. 성경적인 탄식은 불평이나 중얼거림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것입니다. 불평은 하나님 뒤에서 원망하는 것이지만, 탄식은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한 심령과 눈물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마음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정박한 배가 폭풍우 속에서 떠내려가지 않는 이유는 바다 깊은 곳에 무거운 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심령의 닻을 우리의 감정이나 재정 상태, 건강 상태에 내리면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이 요동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닻을 오직 주님의 인자하심(헤세드)과 신실하신 성품에 내려야 합니다.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다윗이 마지막난 중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던 비결은 6절의 말씀과 같이, 과거에 주께서 은덕을 베푸셨던것을 기억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서 골리앗을 무찌르게 하셨던 하나님, 사울의 칼날에서 건지셨던 수많은 밤들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고난이 너무 크게 보인다면, 잠깐 멈추어 서서 지난 세월 나를 인도하셨던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때 도우셨던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도우실 것이고, 내일도 인도하실 것이다!”라는 이 믿음의 기억이 우리로 하여금 미리 감사할 수 있게 하고 찬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의 시작에서 다윗은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며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기도의 터널을 지나, 하나님의 헤세드(인자하심)를 붙잡았을 때, 그의 입술은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라.”는 확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를 버리셨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의 체급을 기르시고, 세상의 조건이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는 가장 깊은 은혜의 초대입니다. 지금 삶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계십니까? 끝이 보이지 않아 낙심되십니까? 영적인 눈을 들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신실하신 사랑이 오늘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이번 한 주간, 원망과 탄식을 기도로 바꾸고, 마침내 승리의 찬송을 부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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