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0 사 3:14-4:6 그 날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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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오면 (이사야 3장 14절-4장 6절)
오늘 본문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아주 명확하고도 두려운 답변이자, 동시에 그 절망의 끝에서 다시 새롭게 피어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혼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4절에, 하나님은 먼저 유다 사회의 지도층인 “장로들과 고관들”을 법정에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지도자들은 포도원을 가꾸고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청지기들인데, 오히려 포도원을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삼켜 버렸다”라고 고발하십니다. 특별히 15절에,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는 생생한 은유의 표현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생존권까지 맷돌에 넣고 갈아버리듯 처참하게 수탈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내 백성을 짓밟는 행위”로 규정하시며 격노하십니다.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것은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안전과 풍요를 위해 사회적 약자들의 탈출구조차 막아버리고, 생명을 구할 기회조차 빼앗아 버리는 사회적 구조 말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 나의 위치나 생각과 고집을 압세워서 가지고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자에게 행한 그대로를 주님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여기십니다. 나의 행복의 성이 누군가의 눈물의 땅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주님은 당장 그것을 허물어버리실 것입니다. 16-26절에, 하나님은 “시온의 딸들”의 화려한 장신구들을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결과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던 자들이 가장 비참한 영적, 사회적 파탄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마치 “시온의 딸들”로 가득찬 것 같습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켜면 온통 자신의 부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은 “시온의 딸들”과 같은 모습이 많습니다. 고급 호텔, 명품 가방, 외모를 자랑하며 “내가 이만큼 잘 산다.”는 것을 과시합니다. 내면이 텅 빌수록 외면을 포장하려 합니다. 성경이 지적하는 “시온의 딸들의 죄”는 단순히 과도한 패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배제하고 외모와 물질로 자신을 채우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교만과 허영”의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의 장신구들을 제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왜 인생의 고난을 통해 우리가 의지하던 물질, 건강, 명예를 거두어가실까요? 그것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세상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우리 영혼의 참 모습을 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결국 4장 1절의 여인들처럼 굶주림과 수치 속에서 사람을 의지하고 구걸하는 인생으로 전락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사람들을 의지하다가 망하게 되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어떻게든 수치를 모면하려고 다시 사람들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으로 자신의 죄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리려고 있습니까? 세상의 썩어질 재물입니까, 지식입니까, 인맥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죄를 위해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입니까? 고린도후서 4장 16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장 2절에 이르러서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의 자리에 구원의 소망의 싹이 새롭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2절에,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여기서 “여호와의 싹”은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왕들이나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맷돌질하며 착취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실 한 의로운 싹이 오셔서 참된 풍요와 영광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 놀라운 단어가 나옵니다. “피난한 자”, “남아있는 자”, “머물러 있는 자”, “생존한 자”입니다. 심판의 불바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그들의 자격과 상태와 상관없이 “너희는 거룩하다”라고 칭해주시며, 생명책(기록된 모든 사람)에 그 이름이 보존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단, 이 회복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4절에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라고 말씀합니다. 축복 전에 반드시 심판과 소멸의 영으로 그들의 더러움을 씻고 청결하게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심판의 불, 고난의 불은 고통스럽지만 우리 인생의 불순물을 태우고 메시아라는 “여호와의 구원의 싹”을 우리의 영혼에 틔우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방법입니다. 3절에, “남아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남은 자”는 자의 힘으로 살아남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선택받고 살아남은 자입니다. 이 어두운 시대 속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바로 '남은 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남은 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고난이 올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은 성령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내 안에 있는 정욕과 허영과 이기심을 깨끗하게 씻어내시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청결하게 하시는 주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 “거룩하다”는 칭함을 받게 됩니다. 5절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 즉 “하나님의 임재(Shekinah)”를 뜻합니다. 과거에 광야에서 임했던 그 영광이, 이제는 메시아를 통해 회복된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즉교회 위에” 영원히 머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또한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라고 말씀합니다. “덮게”는 유대인들의 결혼식 때 신랑 신부 머리 위에 치는 웨딩 차일(텐트)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회복된 백성들을 당신의 신부로 삼으시고 보호의 장막을 쳐주시겠다는 깊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 결과 6절처럼, 어떤 타는 듯한 태양 더위(낮의 더위)와 거친 폭풍우(풍우)가 몰아쳐도, 주가 친히 우리의 영원한 “초막”과 “피난처”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 염려와 두려움이라는 포탄으로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이 무너져도 결코 파괴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초막”이 있어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장막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예배가 있습니다. 5절에, “모든 집회 위에 구름과 불기둥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겠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매주 드리는 주일 예배가 바로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임하는 자리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면, 이 세상의 어떤 염려와 두려움의 공격도 나를 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피난처이신 예수를 의지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을 위협하는 인생의 폭풍우는 무엇입니까? 재정의 위기입니까? 건강의 위기입니까? 관계의 깨어짐입니까? 그 위협들에 대해 내 힘으로 보호하는 우산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주님이 친히 마련하신 영원한 영광의 덮개 아래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 거하는 자가 가장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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