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12 새벽기도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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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본문 : 요 12:12~19
♧ 제목 : 환호했지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을 피해갈 수 없다면 어떻게 고난을 해석하고 고난을 대처할 수 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고난이 생겨나는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 신앙을 떠납니다. 우리가 고난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 그가 이 땅에서 오시고 고난당하셨는지를 깨달을 때, 우리의 고난에 대해서도 바르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하늘을 버리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고난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고난이 없이 영광만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계속되는 고난을 벗어날 수 없다면 고난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예수님처럼 고난을 잘 대처해야만 합니다. 현재의 고난만 생각하지 말고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재의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야 할 사명과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가 있으므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갈 때 부활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십자가의 고난을 친히 감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그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기대가 부딪히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환호하는 무리들 – 기대에 가득 찬 사람들(12-13절)
12-13절에,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이 장면은 흔히 “종려주일”이라고 부르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나사로를 살리신 직후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의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대는 폭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환호하며 외쳤습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여기서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하는 구원은 정치적인 구원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경제적 회복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메시아가 아니라 찬란한 왕관을 쓰실 혁명가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응원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이 내 기대와 다를 때도 그렇게 응원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승리의 영광을 기대하며 살고 있습니까?
2. 십자가를 지기 위해 나귀를 타고 오신 왕 – 다른 방식의 통치(14-15절)
14-15절에,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 성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여러 가지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을 기대하며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셨습니다. 소란스런 군중들 가운데, 가장 조용한 왕, 가장 겸손한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은 스가랴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스가랴 9장 9절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고대 왕들이 전쟁을 선포할 때는 말을 탔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선포할 때는 나귀를 탔습니다. 예수님은 전쟁의 왕이 아니라 겸손한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칼을 기대하였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준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왕좌를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골고다를 향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은 언제나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말씀과 고난 앞에 겸손히 살아가고 있습니까?
3. 제자들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16절)
16절에,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이 장면에서 담담히 말씀합니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 지금 예루살렘의 군중들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들떠 있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혁명이 시작되는구나.” “이제 예수님의 왕국이 세워지겠구나.” 하지만 침묵하시는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를 따라가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 구절이 참 위로가 됩니다.
제자들조차 몰랐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야 기억났다고 합니다. 믿음은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따라가다 보니 이해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성도의 삶, 이해되지 않는 교회의 방향,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침묵….
기도가 응답되면, “주님, 감사합니다!” 일이 잘 풀리면, “호산나!” “할렐루야!”
그런데 일이 꼬이면, 마음속에 의심이 생깁니다. “왜 나귀입니까?” “왜 이렇게 약합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래서 그때 그랬구나.”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아도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기대와 소망 때문에 실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겸손한 왕으로 오셨습니다. 겸손은 이 땅에서 소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워내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도 얻고 구원도 얻으려는 생각이 우리 안에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지금 무엇을 비우며 살고 있습니까?
예루살렘 성에 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 예수님을 떠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현재의 고난에 대해 침묵하면서 겸손히 순종하며 따라가기를 바랍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따라가기를 소망합니다. 16절의 말씀처럼, 나중에 주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보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4. 증언하는 무리와 분노하는 바리새인(17-19절)
17-19절에,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본 무리들이 계속해서 증언했습니다. “우리가 봤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조롱하며 말합니다.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지금 이 말은 비난이었지만, 사실 예언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결국 그들의 말처럼 온 세상 사람들이 따르는 진정한 세상의 왕이 되셨습니다.
겸손하신 왕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증언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분노하였던 이유는 그들이 교만하였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자기를 비워내지 않는 것이고 결국에는 사탄의 밥이 됩니다. 반면에 자기를 비워내는 사람이 미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조롱하는 말처럼 온 세상 사람들이 따르는 진정한 세상의 왕이 되시는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장면을 바라보며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진짜 신앙은 군중심리가 아닙니다. 군중은 금방 바뀝니다. 이 장면에서 “호산나!” 외치던 사람들이 며칠 뒤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변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왕관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또 그들은 로마의 멸망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또 그들은 힘의 승리를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사랑의 희생을 선택하셨습니다.
감정적 신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진짜 신앙은 환호가 사라져도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 날마다 말씀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이날 이후, 그 성에 환호는 사라졌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바닥에 버려져 발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예수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십니다. 그때 도시는 조용했습니다. 더 이상 “호산나”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롱하는 소리와 무거운 절망의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그날, 예수님은 자신을 환호하는 군중을 보셨을까요? 그날 환호하던 그 얼굴들이 며칠 뒤에 자신을 향해 등을 돌리고 조롱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을까요? 알고 계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으로 가시는 길, 십자가를 지려고 가시는 길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왜입니까? 우리가 변할 것을 아셨지만 그분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군중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응답을 받을 때는 “호산나!”라고 외치지만, 기도가 막히면 침묵하는 우리들, 축복이 보이면 찬양하지만 고난이 오면 원망하는 우리들, 우리의 신앙도 종려나무처럼 흔들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변심해도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등을 돌릴지라도 그분은 등을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환호 때문에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 때문에 들어오셨습니다. 박수를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짊어지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종려나무를 흔들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손에 못이 박히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지만, 예수님은 말없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호산나는 감정적인 외침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십자가로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내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삶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며, 내 삶에서 고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령 안에서 살아가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고난을 헤쳐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1. 여러분은 어떤 예수님을 기대하고 계십니까? 문제 해결사이신 예수님? 내 사업을 성공시키는 예수님? 내 자녀를 좋은 대학 보내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기대를 채워주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기대를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2. 나의 신앙은 환호의 신앙입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까? 나는 나귀 타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습니까? 겸손한 예수님, 조용히 일하시는 예수님, 그러면서 나의 계획을 뒤엎으시는 예수님, 그분을 여전히 “호산나”로 맞이하십니까?
3. 나는 감정이 뜨거울 때만 “호산나”를 외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해되지 않는 길에서도 예수님을 찬양하고 환호하며 따르고 있습니까?
4. 나의 신앙은 환호의 신앙입니까, 아니면 헌신의 신앙입니까? 우리가 환호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헌신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찬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순종은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 인생 안에 들어오십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향해 나의 기대를 강요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귀 타신 왕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제자입니까?
지금 내 인생에 들어오시는 왕이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입니까?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르게 나귀를 타고 조용히 들어오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내가 기대한 방식이 아닌 겸손한 방식으로. 기억하십시오. 나귀를 타고 들어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진정한 왕이십니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6-03-12 14:09:58 나눔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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