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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

260317 새벽기도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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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샘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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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심령에 괴로움을 주는 사람

(요한복음 1318-30)

 

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7절에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그 뜻을 알고 우리가 행하면 그것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 예수님의 말씀과 관계없는 사람, 이 예수님의 말씀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과 공생애 동안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도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는 예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의 심령에 괴로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1절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였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심령에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심령에 괴로움을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나옵니다. 21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는 아주 엄중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을 판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배반에 대하여 숨기지 아니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한 사람이 가룟 유다라는 것을 잘 압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심령에 기쁨이 아니고 괴로움을 준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주님과 함께 했지만 주님께 속하지 못하고 결국은 예수님을 등지고 예수님을 떠나 예수님을 배반하는 길을 갑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께 괴로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주님께서 속해 있지만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할 때는 근심을 주게 됩니다. 에베소서 4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주님께서도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기쁨을 강조합니다. 빌립보서 418절에서는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 디도의 편에 보낸 사랑의 연보에 대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10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후서 59절에서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기쁨을 위하여 자신을 드리기를 힘썼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염려하게 하는 자가 아닌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고 계십니까?

23절에,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그가 사랑하시는 자”, 즉 요한이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고 했습니다. 그가 비스듬히 있는 상태에서 예수님께 조용하게 묻습니다. 25절에, “주여, 누굽니까?” 예수님께서 26절에 대답해 주십니다.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으십니다.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조각을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은 132절에서 이미 가룟 유다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아셨습니다. 유다는 스스로 예수님을 넘기겠다고 계획하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마귀적인, 사탄적인 생각이라고 하십니다. 670절에도 유다를 마귀와 관련해서 말씀하셨는데 너희 중의 한 사람인 마귀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파는 데는 마귀의 역사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1327절에는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조각을 먹기도 전에 사탄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갔습니다. 27절에, 예수님께서는 그런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유다를 지배하여 역사하고,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을 알고도 자기 생각대로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각하고 행하는 사람인 반면에 예수님의 심령을 괴롭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신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탄이 유다의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제자들은 알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만 그것을 보셨습니다. 29절에, 어떤 사람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기 때문에 명절에 쓸 물건을 사라고 하시는가보다, 이렇게 생각을 했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시는가보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심정을 괴롭게 하고 예수님의 뜻에 대적하는, 예수님을 해하려는 자가 예수님의 공동체 안에 있었습니다. 그 공동체를 위한 일을 했습니다. 또한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예수님의 선택 밖에 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없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일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예수님과 내가 어떤 관계 안에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존비비어의 순종이라는 책의 영어 제목이 “Under Cover”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 내가 할 일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 아래 보호 받고자 자신의 생각과 문제를 다 내려놓고 그의 날개 아래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에서 드리라는 말은 맡기다, 의지하다의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일에도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리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복종하게 하는 일, 나를 죽이는 일, 주님의 보호 아래에 들어가는 일이 있어야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이 우선이 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도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경계를 두기 위함입니다. 이 경계가 명확해야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살 수 있습니다. 이 관계가 무너지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며 그의 보호아래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위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겸손한 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행할 수 있습니다.

30절에,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하려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분명했는데, 그는 그의 말씀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나간 곳이 바깥 어두운 곳입니다. 참 불행한 길, 사망의 길을 향하여 나아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 가운데 사탄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룟 유다에게는 책임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에게 분명히 책임이 있습니다. 첫째로, 가룟 유다에게는 사탄이 역사하기 좋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126절을 보면 가룟 유다는 돈궤를 맡았던 사람인데 그 돈궤에 있는 돈을 훔쳐가는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는 돈 중심의 인생관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돈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중심이 잘못 서 있는 사람은 사탄이 역사하기 아주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한, 유다는 자신이 기대하는 지도자의 상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가룟의 헬라어 번역은 시카리오스인데 자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열심당원 중에서도 극렬분자인 자객단소속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이적들을 보며 예수님을 통해 그의 이상이 이루어지기를 원했지만,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실망하여 결국에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를 팔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동안 가까이서 주님을 따랐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제자였습니다. 마태복음 101절을 보면, 주님께서 주신 권능을 가지고 사역도 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요한복음 1320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여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속하지 못하여 구원 받는 자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그의 손에 예수님이 쥐어 주신 떡 한 조각만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기 위해 어둠속으로 사라진 안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 소속되어 활동도 하고 직분을 가지고 있고 열심히 봉사하여도 주님의 마음에 괴로움을 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우선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기에 주저하거나 순종하지 않음으로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가룟 유다처럼, 바울 공동체의 데마처럼 예수님을 떠남으로 예수님의 마음에 괴로움을 주는 사람, 예수님의 대리자인 목회자의 마음에 근심을 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지금 내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주님으로 고백하고 주님을 사랑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행하기를 기뻐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데 주님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 생기지 않도록, 그래서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예수님의 공동체를 떠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믿음을 굳건히 하여 주님만을 의존하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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