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20 새벽기도 말씀
페이지 정보
작성자성실
본문
샬롬♡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본문 : 요 14:15~21
♧ 제목 : 우리와 함께하는 영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구약의 십계명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데, 예수님이 주신 계명을 왜 '새 계명'이라고 할까요?
'이웃 사랑'에 있어 구약의 계명과 신약의 계명이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고, 신약에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수님처럼 '원수까지 사랑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랑'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렇게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아시면서 왜 우리에게 예수님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을까요? 심지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거짓말쟁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주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6절)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입니다. 이 말씀에 우리의 눈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세상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님을 압니다. 그 분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는 영역이 광범위하시지만, 특별히 '새 계명' 즉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 사랑'을 가능하게 도와주십니다. 미국의 총기사건에서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한 사건이나,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 삼은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고백해야 합니다.
"성령님 인정합니다.
성령님 환영합니다.
성령님 모셔드립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성령님 나와 함께하옵소서
성령님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나의 감정조차 뛰어넘지 못하는 연약한 자이기에 매일 성령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하려는 것은 '죄'입니다. 내 안에 오신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성령님도 일하시지 않고 그대로 계십니다. 그렇기에 나를 다스려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내가 할 수 없는 사랑을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결단'하는 것입니다. "네, 순종하겠습니다." 사랑과 순종은 동일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랑하기로 '결단'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는 믿음의 사람되게 하소서."
오늘도 응원합니다. 화이팅!!~~♡♡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본문 : 요 14:15~21
♧ 제목 : 우리와 함께하는 영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구약의 십계명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데, 예수님이 주신 계명을 왜 '새 계명'이라고 할까요?
'이웃 사랑'에 있어 구약의 계명과 신약의 계명이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고, 신약에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수님처럼 '원수까지 사랑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랑'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렇게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아시면서 왜 우리에게 예수님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을까요? 심지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거짓말쟁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주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6절)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입니다. 이 말씀에 우리의 눈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세상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님을 압니다. 그 분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는 영역이 광범위하시지만, 특별히 '새 계명' 즉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 사랑'을 가능하게 도와주십니다. 미국의 총기사건에서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한 사건이나,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 삼은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고백해야 합니다.
"성령님 인정합니다.
성령님 환영합니다.
성령님 모셔드립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성령님 나와 함께하옵소서
성령님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나의 감정조차 뛰어넘지 못하는 연약한 자이기에 매일 성령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하려는 것은 '죄'입니다. 내 안에 오신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성령님도 일하시지 않고 그대로 계십니다. 그렇기에 나를 다스려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내가 할 수 없는 사랑을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결단'하는 것입니다. "네, 순종하겠습니다." 사랑과 순종은 동일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랑하기로 '결단'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는 믿음의 사람되게 하소서."
오늘도 응원합니다. 화이팅!!~~♡♡
관련링크
- 이전글260323 새벽기도 말씀 26.03.21
- 다음글260319 새벽기도 말씀 26.03.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