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9 고전 6:1-11 십자가 복음과 사랑으로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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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복음과 사랑으로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라 (고린도전서 6장 1-11절)
우리는 지금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의 뉴스 사회면에 교회의 부끄러운 이름들이 오르내릴 때가 많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던지는 첫 마디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1절에,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무슨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교회 내부의 재산 문제, 이권 다툼, 개인적인 갈등을 안고 세상의 법정으로 달려갔습니다. 세상의 법정 앞에 무릎을 꿇고 “저 예수 믿는 사람이 나를 속였으니 벌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습을 보고 가슴을 치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분노했을까요? 교회의 체면이 깎여서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갈등을 다루는 하늘의 방식을 깨닫고, 그것을 통해 잃어버린 교회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갈등에 눈이 멀어 세상의 법정으로 달려간 성도들의 뒤통수를 치는 놀라운 영적 비밀을 선포합니다. 2-3절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장차 주님과 함께 세상을 심판하고, 심지어는 천사들까지도 판단할 영광스러운 하늘의 재판관들입니다. 그런데 고작 세상의 썩어질 돈 문제, 자존심 문제 때문에 세상 법정의 판단을 받으러 가느냐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린아이에 머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스스로 대단한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했지만, 그들의 삶의 수준은 세상 사람과 똑같았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을 자들이 땅의 작은 조각 때문에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만을 정면으로 지적했습니다. 5-6절에, “너희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랑하더니, 형제간의 갈등 하나 중재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교회 안에 단 한 사람도 없느냐? 그래서 결국 불신자들 앞에서 형제가 형제를 고소하느냐?” 세상 법정에 교회의 문제를 가져가는 순간, 복음의 문은 닫히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들도 우리랑 똑같네, 돈 앞에서는 장사 없네.”라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게 됩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에, 한 가난한 청년이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이웃집 사람이 자신에게 진 빚 2.5달러(당시 기준으로도 소액)를 갚지 않으니 법대로 소송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링컨은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고작 2.5달러 때문에 이웃과 원수가 되고 법정까지 가려 하는 것이오? 소송 비용이 더 들겠습니다. 차라리 내가 당신에게 5달러를 줄 테니 이 소송을 포기하십시오.” 하지만 청년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라며 끝까지 재판을 하겠다고 고집부렸습니다. 결국 링컨은 그 청년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재판을 맡아 승소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난 후 링컨은 깊이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당신은 이웃의 마음을 잃었고 사회의 평화를 깨뜨렸습니다. 당신은 과연 이 일로 무엇을 얻었습니까?”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바로 이 청년과 같았습니다. 법적으로 내가 맞는지, 네가 틀렸는지를 가려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형제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갈등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파격적이고 차원 높은 방법을 제시합니다. 7절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합니다. 첫째로, 차라리 손해를 보십시오.(양보의 영성) 세상은 “절대 손해 보지 마라, 네 권리는 네가 챙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무엇입니까?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온갖 불의를 당하시고 온갖 모욕을 당하시고, 목숨까지 손해 보셨습니다. 자신에게 질문하여 보십시오. 내가 이 재판에서 이겨서 몇 푼의 돈을 건지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성도들이 세상에서 기꺼이 손해를 감수할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 안에서 예수를 보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 답게 사십시오. 바울은 불의를 행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라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돈에 눈이 멀어서 형제를 속이고 사기 치는 자는 그의 믿음이 가짜일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지분을 넓히기 위하여 사는 자들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상속자답게 통 크게 양보하십시오. 셋째로,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십시오.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과거에 추하고, 탐욕스럽고, 남을 속이던 자들,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오직 예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 깨끗하게 되었고, 거룩해졌으며,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떻게 작은 이익 때문에 형제를 고소하고 파멸로 몰고 갈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문제가 없는 곳이 아닙니다. 허물 많은 죄인들, 구원받은 죄인들이 모였기에 언제든지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교회의 결정적인 차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세상은 법정으로 달려가 서로를 난도질하지만, 교회는 십자가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내가 옳더라도 형제를 위하여 기꺼이 속아 주십시오. 내 정당한 권리이지만 교회의 평화를 위해 차라리 손해를 보십시오. 무엇보다 세상 법정의 판결문보다 더 정확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습니다. 지금땅에서 손해를 본 것은 하늘의 아버지가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세상의 법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법정에서 모든 갈등을 녹여버림으로써,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거룩한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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