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0 고전 6:12-20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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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장 12~20절)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가장 큰 화두는 ‘자유(Freedom)’입니다. “내 인생은 내 것”, “내가 내 몸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라는 외침이 문화와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자유를 외치면 외칠수록 더 많은 중독과 집착, 또는 공허함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스마트폰의 자유를 누리다 스마트폰에 중독되고, 소비의 자유를 누리다 빚에 허덕이며, 쾌락의 자유를 좇다가 결국에는 삶이 파괴되고 맙니다. 오늘 본문의 고린도 교회의 상황도 이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 사이에 이상한 논리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하셨으니, 이제 내 육체로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 그들은 영혼만을 중요하고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잘못된 생각(영지주의적 성향)에 빠져, 세상의 음란한 문화를 교회 안으로 그대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착각에 빠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과, 그리고 동일한 유혹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여 “참된 자유가 무엇이며, 우리 몸의 가치가 얼마나 고귀한지”를 피를 토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참된 자유는 절제와 공동체의 유익을 따르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외치던 말인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치면서 설교를 시작합니다. 12절에, 첫째로, 진정한 자유는 자신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참고 절제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의 기준은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이것이 내 영혼과 이웃에게 유익한 것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에게는 죄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쾌락을 마음대로 누리는 것이 자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쾌락의 노예가 되는 길입니다. 술을 내 마음대로 마실 자유를 부르짖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얽매임’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진짜 자유입니다. 셋째로, 우리에게는 주를 위하여 내 몸을 헌신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음란을 위한 것이 아닌 주님을 위한 것으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13절에,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음식은 이 땅에서 없어질 것이지만,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럽게 다시 살리실(14절)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기차는 오직 단단하고 곧게 뻗은 ‘철로 위’를 달릴 때만 가장 안전하고, 가장 빠르며, 가장 자유롭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함이라는 철로를 벗어난 인간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파멸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자유는 내 마음대로 죄를 지을 자유가 아니라,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자유입니다. 우리는 머리 되신 예수님의 손과 발, 즉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성도들은 낮에는 예수님의 지체로 예배를 드리고, 밤에는 창녀와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지체를 세상의 더러운 음란한 것과 결합하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끔찍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무서운 유혹 앞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피하라!”입니다. 성적인 유혹은 영적인 전쟁인 동시에 육체적인 유혹이기에, 마주 서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가히 없습니다. “나는 믿음이 좋으니 이 정도 영화나 음란한 문화는 보고 이겨낼 수 있어.”라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유혹의 환경 자체를 차단하고 도망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영적 장수입니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예수님의 눈과 손과 발을 가지고 더러운 곳에 머물지 않도록, 지금 당장 끊어내고 도망쳐야 할 유혹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 받은 성도 개개인의 몸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더러운 음란과 죄악으로 더럽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착각합니다. “내 몸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거야. 건강을 해치든, 음란하게 쓰든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소유권이 하나님께로 완전히 이전되었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사탄과 죄의 권세의 노예 시장에서 울고 있던 우리를 사기 위해 지불하신 ‘값’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이런 엄청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기에, 우리의 몸은 이제 온전히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소유권이 바뀐 사람은 삶의 목적도 바뀝니다.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즐겁게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몸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 나의 눈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나의 입술은 어떤 말을 담고 있습니까? 나의 발은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내 마음대로 살도록 방임된 자들이 아니라, 유익과 절제를 따르는 참된 자유인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된 성령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도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주일날 교회 안에서 의자에 앉아있을 때만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의 몸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통해 증명됩니다. 내 피곤한 몸을 일으켜 이웃을 섬기고 봉사할 때, 내 입술을 제어하여 험담을 멈추고 대신 격려와 찬양을 담을 때, 내 눈을 어두운 모니터 화면에서 돌려 하나님의 말씀과 지체들을 사랑으로 바라볼 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때,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썩어질 쾌락과 비교할 수 없는, 성령의 위로와 하늘의 기쁨이 거룩한 몸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에 매일같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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