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7 사 9:8-10:4 무너진 자리에서 배워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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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자리에서 배워야 할 것 (이사야 9장 8절-10장 4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교만과 불의에 빠진 북이스라엘을 향한 강력한 심판의 메시지이며 오늘날 우리의 삶의 무너진 자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고통 중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돌이켜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공들여 쌓아 올린 삶의 탑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건강이 무너지기도 하고, 사업이나 직장이 흔들리기도 하며, 가장 믿었던 인간관계에 금이 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럴 때 우리는 이를 악물고 일어섭니다. “이 정도 시련쯤이야 극복할 수 있어. 내가 보란 듯이 재기하고 말겠어!”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세상은 이것을 “강인한 의지”, “회복탄력성”이라고 부르며 칭송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없는 자기 확신”, 교만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북이스라엘은 외세의 침략과 자연재해로 국토가 황폐해진 상태였습니다. 나라의 기초가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그들이 내뱉은 고백이 10절에 나옵니다.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는도다.” 겉보기에는 대단히 진취적이고 희망찬 포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고백을 보시며 진노하셨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마음 속에 “회개”가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원인이 자신들의 죄와 하나님을 떠난 삶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외하고 오직 자신들의 힘과 기술로 더 크고 화려한 바벨탑을 쌓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눈”이 가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너진 벽돌을 보면서 하나님의 경고를 읽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과시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주변 나라들(아람과 블레셋)을 통해 끊임없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셨지만(11-12절), 이스라엘은 “더 튼튼한 돌(다듬은 돌)을 쓰면 안전하다.”라며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비웃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 “돈을 더 벌면 해결될 거야.”, “인맥을 더 넓히면 극복할 수 있어.”라면서 세상의 “다듬은 돌”과 “백향목”을 찾아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힘으로 다시 쌓으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때로는 아프게 다가옵니다. 13절은 이스라엘의 비극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그리하여도 그 백성이 자기들을 치시는 이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치신 목적은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손을 들고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매를 맞으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지도자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리고(14-16절), 사회 전체가 서로를 헐뜯고 삼키는 아귀다툼의 현장으로 변해버립니다(19-21절).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회는 결국엔 스스로를 파괴하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통증은 괴로운 것이지만, 사실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설계하신 가장 안전한 경고의 장치입니다. 영적인 통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마음이 찔리고, 삶이 흔들릴 때, 영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은혜의 신호입니다. 최근에 여러분의 마음에 찾아온 영적인 통증이나 삶의 곤고함이 있습니까? 그것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신호입니다. 아픔의 때에 원망의 대상을 밖에서 찾지 말고, 내 영혼의 무릎을 하나님 앞에 꿇는 계기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교만은 반드시 사회적인 불의로 이어집니다. 이사야 10장 1-2절은 당시 북이스라엘의 기득권층이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과부와 고아 등 약자들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탈취하였음을 폭로합니다. 이미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예를 들어서 남 유다의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합니다. 주일 예배는 드리지만 이웃의 눈물에는 무관심한 삶,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고통은 가볍게 무시하는 삶을 향해 하나님은 묻고 계십니다. 3절에, “벌하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너희가 도움을 구하러 어디로 도망하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삶의 현장에서 이웃을 대하는 태도 역시 면밀하게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삶의 구체적인 영역(가정, 직장, 재정 관계)의 어둠 속에서 죄를 짓고 갈등을 일으켜 놓고는, 주일 예배라는 “밝고 편안한 가로등 밑”에 와서만 신앙적인 해결을 얻으려고 합니다. 진짜 회개는 내가 어지럽혀 놓은 삶의 어두운 구석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정직과 공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다는 이유로 말미암아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정에서 배우자와 자녀에게, 직장에서 부하 직원들이나 거래처 사람들에게 행하는 나의 언행은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합니까? 진정한 예배의 회복은 삶의 현장에서 약자들을 돌아보고 공의를 행하는 삶의 예배로 완성됩니다. 본문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두려운 구절은 반복해서 등장하는 후렴구입니다.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사 9:12, 17, 21, 10:4) 이 말씀은 심판의 무서움을 경고하는 동시에, 반대로 생각하면 여전히 우리에게 돌아올 기회를 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애끓는 기다림이기도 합니다. 완전히 쓸어버리실 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손을 펴신 채로 우리가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너진 자리에서 세상의 벽돌과 백향목을 다시 채우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무너진 그 자리는 내 힘을 빼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할 예배의 자리입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내 안의 교만을 다 내려놓고, 삶의 고통 속에서 세밀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내 삶의 구석구석에서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진짜 예배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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