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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

260723 사 6:1~13 "이사야에게 주신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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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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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이사야를 1장에서 불러 주셨지만, 이사야 6장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이사야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납니다. 이사야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사1:1). 웃시야는 아마샤의 아들이며, 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로, 웃시야와 이사야는 사촌으로 추정됩니다. 이사야가 왕궁을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든 것은 그가 왕족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왕은 신과 같은 존재였기에, 이사야가 사촌인 웃시야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하면 안되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히 믿던 웃시야가 죽고나자, 이사야는 비로소 6장 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사명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내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았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 것은 6장 1절의 사건 이후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1~4절)
하나님의 임재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자신의 날개로 얼굴과 발을 가리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빛과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가리는 모습으로 천사들이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하나님의 절대 거룩성과 완전성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고나면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나의 연약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 앞에 나의 추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부복한다는 것입니다. 죄로 더럽혀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지만,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5절)
이사야는 왜 자신의 입술이 부정하다고 표현했을까요? 우리 입의 말은, 우리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대변하는 중요한 수단이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인 것입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추함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없이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 '악'인 것입니다. 우리 삶에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생각과 내 감정을 앞세우면 내가 내 삶에 왕이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철저히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6~7절)
천사가 핀 숯을 이사야에 입에 댄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죄를 씻어 주시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죄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믿음 안에 들어가려면 먼저 '죄의 장벽'을 깨뜨려야 합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8절)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비로소 이사야에게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십니다. 그 때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응답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 땅에서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축복'입니다. 주님 앞에 사명자로 쓰임 받을 때 천국에 가서 큰 상급을 받습니다. 사명자로 쓰임 받을 그릇을 준비 합시다. 사명이 축복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9~10,1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시고 심판을 내리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제까지는 부르시지만, 그 때까지 응답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거룩한 씨를 찾고 계십니다. 남은 자, 그루터기가 되어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 앞에 사명을 받고 있는 이사야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거룩한 씨가 되어 사명자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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