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6 새벽기도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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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서 평강으로 의심에서 믿음으로 (요한복음 20장 19-31절)
이 세상을 살아가며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상처 받고 넘어지게 되면 절망과 슬픔, 그리고 두려움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우리들을 넘어지게 하고 상처 입게 하는 일들로 인해 좌절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그것들을 극복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여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부활하시어 살아계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굳게 닫혀진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여시고 우리에게 들어오시어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힘을 주시며 회복시키심으로 우리를 일으키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움과 절망으로 인해 문을 걸어 잠갔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을 변화시키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요?
1.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상처가 평강으로 바뀌게 됩니다.
19절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기쁨이 가득하여야 할 제자들이 두려워하여 모였고 그곳의 문이 닫혀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허무하고 끔찍하게 죽으실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로 인해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하루 종일 두려움에 떨며 문을 굳게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누가복음 24장 11절에,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않았습니다.” 또한,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자 예수님이 계셨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비어 있는 무덤은 보았으나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놀랍게 여겼으나 믿지는 못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죽으심 때문에 절망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로부터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그들이 처한 상황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세 번이나 있었지만 그들은 믿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사건을 감정적으로 이해할 뿐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하였던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첫째로,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요한복음 20장 18절에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라고 고백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고 제자들에게 전하였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붙들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6-9절에서, 여인들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리라 하셨느니라.”는 천사의 말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전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24장 32절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만나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에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떤 말씀을 풀어 주신 것입니까?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부활하시어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시는 것에 대한 모든 구약의 말씀들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8절에서 막달라 마리아도 “내가 주를 보았다.”는 고백 다음에 “주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20장 17절에, “내가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으로 볼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절망과 상처의 문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그리고 그의 말씀을 듣고 기억할 때 해결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절망하고 상처 입은 우리에게 찾아오시어 만나주시고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19절의 말씀처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평강은 하늘의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요한복음 14장 27절의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말씀처럼,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우리의 힘으로 얻을 수도 없는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참 평안입니다. 민수기 6장 26절에,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저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평강이 있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늘 본문에서만도 세 번이나 반복하여 선포하며 말씀하십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의심이 믿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를 절망과 상처에서 건져내시고 하늘의 평강을 누리게 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또한 우리를 만나 주시어 우리의 의심을 믿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19절에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하시며 평강을 선물로 주신 예수님은 20절에서, 제자들에게 그의 손과 옆구리에 난 상처를 보여주십니다. 왜 보여주십니까?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믿음으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특히 디두모, 즉 쌍둥이라고 불리우는 도마가 가장 의심이 많았습니다. 영어속담에 의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Doubting Thomas”라고 하는데 이는 도마가 얼마나 의심이 많았는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24절의 말씀처럼,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절망에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고자 그의 상처를 보여 주셨던 예수님은 20절에서, 도마를 위해서 다시 찾아오셔서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자 그의 상처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도마에게 27절에,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 없는 자’와 ‘믿는 자’의 문제는 바로 성도들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의 말씀은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믿는 자가 되라고 격려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을 선택하는 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을 선택하기를 바라시며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시어 그의 상처를 바라보고 그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심 많은 도마는 그렇게 에수님의 상처를 만진 후에 ‘믿는 자’로 변화되어 28절에서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며 시작된 요한복음은 공식적인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의 마지막을 의심 많던 도마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고백으로 끝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31절에,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이 나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힘입어 생명을 얻게 됩니다.
3. 두려움에 빠졌던 자들이 사명을 가진 자들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은 21절에서 다시 한 번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하신 후에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가 ‘보냄을 받은 자’와 ‘보내는 자’의 관계인 것처럼, 그들도 예수님과 ‘보냄을 받은 자’와 ‘보내는 자’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시고 세상에 보내시어 ‘사도’로서 살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그냥 보내시지 않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평강과 믿음을 주신 예수님은 또한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이유는 세상에 나가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무엇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까? 23절에,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는 말씀처럼 죄를 사하는 권세를 행하여 사람들을 죄와 절망과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성령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은 요한복음 14장 16-17절의 말씀처럼,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이시고, 요한복음 16장 7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전해야 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예수님의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실제로 이루어져서 그때로부터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죄 사함의 권세를 행하며 복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움에 빠져 있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시어 평강과 믿음과 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신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상처를 평강으로, 의심을 믿음으로 바꾸시며 그의 사명을 위해 살아가게 하십니다. 날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며 에베소서 2장 10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한 존재로서 새롭게 지으심을 받아 변화된 삶, 소망의 삶, 능력의 삶,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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